동해백서 이야기 (4)
동해 표기 백악관 청원(請願)을 한 2012년 3월 22일 사실 필자는 당시 A회장에게 백악관 청원자가 되는 기회를 양보했었다. 버지니아 한인회장이니 그의 이름으로 청원을 신청하라고 양보하자 그는 백악관 청원 기능을 필자가 처음 찾아 냈으니 필자의 이름으로 신청하는것이 순리라며 청원 신청자가 되는 것을 거절했다. 이렇게 필자가 청원자가 된 백악관 청원 운동은 A회장과 버지니아한인회 모든 임원들이 앞장서며 본격화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물론이고 이메일과 전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미국내 한인들에게 서명에 동참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백악관 청원을 처음 신청했을 때에는 이메일로 웹사이트 링크를 하나 받았다. 비공식 사이트 링크로서 클릭해서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볼수 없는, 그야말로 사이버 공간에 떠있는 링크였다. 150 명의 서명이 넘어야만 백악관 공식 웹사이트에 동해 청원을 알리는 박스가 뜨게 되는 방식이었다. 청원 신청 후 3일이 지났는데도 150명의 서명을 받지 못했다. 필자와 버지니아 한인회 임원들을 매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속도로는 30일 동안 2만 5000명의 서명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4일째 겨우 150명이 넘어 드디어 우리의 ‘동해’ 청원서가 백악관 웹사이트에 공식적으로 올려졌다. 그러자 워싱턴 지역 기자들과 한인 단체장들도 서명운동에 앞장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주에서 서명 운동에 앞장서는 한인들의 숫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5일째부터는 하루에 3~4000명이 서명을 하며 가속도가 붙더니 불과 13일만에 2만5천명이 넘는 미주 한인들이 서명에 동참하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한인들의 동해 백악관 청원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자 일본 우익세력의 방해공작도 시작됐다. 필자의 이메일과 페이스북이 수시로 해킹을 당했고, 일본 우익 세력은 백악관 청원 기능을 활용해 우리에게 맞불을 놓았다. 바로 미주의 한 일본인이 동해 청원에 반대되는 내용의 백악관 청원을 올린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을 모두 공산주의자로 몰고 ‘동해’란 바다 이름을 포함시켜주면 안된다는 일본 입장을 대변하며 동해 청원을 공격하는 내용의 반대 청원서였다.
그런데 일본의 청원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니 하루에 고정적으로 8~900명이 서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도 약자(略字)로 명시하고 거주 지역은 거의 밝히지 않은 것을 보니 일본 우익 세력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조직적으로 서명을 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반면 동해 청원 서명은 어느날은 하루에 20~30 명, 또 어떤 날은200~300명, 3000~4000명 등 서명하는 인원수가 불규칙했다. 곳곳에서 자발적인 서명 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 백악관 사이트에서 ‘사이버 한일전’이 벌어지면서 한국내에서도 서명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으로 서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가능했고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도 백악관 청원에 동참했다.
원래 이 청원 운동은 서명지를 통해 하는 것인데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후 온라인 청원 방식으로 바꾸면서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 서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 허점은 우리 한인들보다 일본 우익 세력에게 유리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다수 서명했기에 10만 여명이 청원에 동참했지만 사실상 미국내 한인들만으로도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2만 5000명의 서명은 13일만에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내 거주하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숫자는 한인의 반 밖에 안될뿐더러 이 이슈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만약 백악관 청원 시스템의 허점이 없었다면 일본측은 2만 5000 명이라는 숫자를 달성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 우익 세력들은 일본내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하루에 8~9 백명씩 서명하게 했고, 30 일간 간신히 2만 5000명을 넘긴 것이다.
30일간의 청원 운동이 끝난 후 미주 한인들은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2만 5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으므로 백악관 브리핑 룸에서 공청회(公聽會)가 열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청회에는 한인 대표3명과 백악관측 대표 3명이 패널로 참가해 동해 이슈에 대한 토론을 벌일 예정이었다. 공청회를 마치고 나면 백악관측이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여 백악관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것이 남아있는 과정이었다.
앞서 미국내 베트남 커뮤니티에서는 베트남 인권 문제로 청원 운동을 벌여 15 만명이 넘는 서명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베트남 커뮤니티 관계자는 이를 통해 백악관에서 실질적으로 공청회가 열렸고 나중에 백악관의 공식 입장까지 받았다고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동해 청원과 정반대되는 내용의 일본측 청원도 2만 5000명을 넘겼고 미국 국무부의 기존 입장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인정하는 상황이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모나코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국제수로기구 회의에서 ‘동해 병기안’을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다음 회의로 보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전의 회의에서는 ‘동해 병기안’이 좌절되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결정을 유보한다니, 과연 백악관 청원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것은 알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백악관 청원 운동이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특히 8개월 후인 2012년 11월 5일 치러질 미국 대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초조한 마음으로 백악관측으로부터 연락을 기다리던 필자와 미주 한인들은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된다. 2012년 4월 29일, 일본의 노다 총리가 백악관을 깜짝 방문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면담을 했는데 대화 내용이 분명하게 공개 되지 않았다. 동해 백악관 청원 운동에 대해 논의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필자와 한인들은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때가 되면 연락이 오겠지’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기다리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