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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김의 동해탈환 이야기
2014년 3월 미역사상 처음 다른 나라의 영토 영해의 명칭과 관련된 법안이 통과됐다.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통과된 동해병기 법안이다. 1929년 식민시기에 일제가 국제수로기구(IHO)에 일본해를 등록시키면서 잃어버린 우리의 바다 ‘동해’를 되찾는 선봉에 선 ‘미주한인의목소리(VoKA)’ 피터 김 회장으로부터 ‘동해 탈환’을 하기까지 9전9승의 생생한 비화와 향후 우리 2세, 3세 한인자녀들을 위한 풀뿌리시민운동의 전범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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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라도 백악관을 압박하겠다!”

(5) 동해백서이야기
글쓴이 : 피터 김 날짜 : 2017-11-22 (수) 02:12:36

 

 

20126월초 A 회장이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한인회장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홍 회장은 필자에게 미국에 있으면 더 불안하니 한국에 같이 나가자고 제의했다. 백악관에서 연락이 오는 즉시 급히 돌아오면 될 것이라며, 취업박람회를 치르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비행기표 값 반을 대주겠다고 했다. 실제로 필자가 총괄했던 취업박람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60개가 넘는 참가 업체들과 2000 명이 넘는 구직자들로 한인회 사상 가장 성공적인 취업 박람회로 평가 받았다. 또한 2만 달러가 넘는 순이익도 냈기 때문에 칭찬을 받을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일도 처리할 겸 필자는 A 회장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한국에서 각자 일을 보고 있던 어느날, 정확히 말하자면 2012629, 미 국무부가 동해 백악관 청원에 대한 답변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일본해 단독 표기를 인정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내용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백악관 공청회는 생략하고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매우 부적절한 답변이었다. 우리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청원을 시작했는데 미 교육부 대신 국무부가 부적절한 검토를 하고 엉뚱한 답변을 내놓은 꼴이었다.


피터+김 - Copy.jpg

 

필자는 부랴부랴 역삼역 근처 호텔에 머물고 있었던 A 회장에게 연락해 만났다. 그 자리에는 A 회장이 알고 있던 G와 김종구 그리고 필자의 친구 이응민도 함께 했다. 매우 흥분한 필자는 열분을 토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교육 문제로 청원을 해서 10만여 명이 서명을 했는데 국무부가 부적절한 검토를 하고 잘못된 답변을 했으니 우리 한인들이 끝까지 백악관을 압박하여 적절한 검토와 적절한 공식 답변을 얻어 내야 한다.“

 

그러자 A 회장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 정도 했으면 됐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정도로 절대 충분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청원서에 서명한 한인들을 위해 적절한 답변을 받아내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A 회장은 또 더이상 백악관을 압박하는 것은 반정부 활동이 될 것이라며 여기서 그만 마무리를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는 그렇다면 동해 백악관 청원은 피터 김이 시작했으니 혼자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말한 후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A 회장의 친구인 G도 자리를 함께 떠났다.

실망스러운 얼굴로 의기소침(意氣銷沈)해 있던 필자에게 김종구와 이응민은 피터 김 혼자서라도 끝까지 백악관을 압박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필자가 혼자서도 가능하겠냐고 되묻자 두 사람은 새벽 4시까지 필자에게 혼자라도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필자는 결국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자라도 끝까지 백악관을 압박해서 적절한 공식답변을 얻어 내도록 하겠다라는 약속을 하게 됐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백악관 청원에 동참한 102043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남은 일을 마저 마치고 뒤늦게 버지니아로 돌아온 필자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먼저 귀국한 A 회장이 이미 기자 회견을 열고 백악관 청원 공식 답변에 대한 유감표명으로 동해 청원운동을 사실상 마무리 짓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A 회장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왜 혼자 기자 회견을 열어 마무리를 지은 것입니까?”라고 따졌고, A회장은 한인회는 더이상 동해 백악관 청원운동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필자는 그럼 나 혼자라도 끝까지 추진하겠다A 회장에게 통보했다.

       

필자는 곧바로 한인회 페이스북을 통해 백악관 청원에 서명해 주었던 한인들에게 상세한 상황 설명을 하고 계속해서 백악관을 압박해 적절한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러자 A 회장은 곧바로 이는 한인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또한 A 회장은 소영웅적인 행동만으로 동해 병기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라는 댓글도 달았다. 무척 화가 난 필자는 A 회장을 만나서 따졌다.

 

혼자 계속해서 백악관 청원을 추진하라고 해놓고 왜 방해를 하냐고 묻자 A 회장은 피터 김 혼자서 하라는 것이었지요. 우리 한인회는 올해 후반기부터는 북한 인권 문제에 집중할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

 

필자는 어차피 취업박람회 때문에 한인회 임원으로 있었지만 취업박람회도 끝났고 백악관 청원 문제도 혼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니 굳이 한인회에 속해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 사임을 표했다. A 회장도 흔쾌히 그리 하라고 했다.

 

필자는 한인회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려 백악관 청원에 서명해준 한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혼자라도 끝까지 백악관을 압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A 회장은 또다시 이는 버지니아 한인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버지니아 한인회는 후반기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집중할 것입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 다음날 필자가 다른 주에 있는 여러 한인들과 연락하기 위해 한인회 페이스북에 접속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A 회장이 필자를 버지니아 한인회 페이스북으로부터 영구 제명시켰기 때문이다. 한인회 페이스북을 통해 그동안 대화를 주고 받던 타주의 한인들과 접촉이 가로막힌 것이다.

 

너무 화가 난 필자가 당장 A 회장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지만 갈길은 먼데 시간 낭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백악관으로부터 적절한 공식 답변을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졌다. 필자는 본인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백악관 청원에 서명해준 다른 한인들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진행 상황을 수시로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우선 필자는 미 국무부 공식 답변에 항의하는 1차 서신을 한국에 있을 당시인 2012630일에 보냈으며, 2차와 3차 항의 서신을 백악관과 국무부에 계속해서 보냈다.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백악관과 국무부에 전화해서 항의하는 메시지를 남겨놓고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이메일로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백악관과 국무부는 완벽하게 침묵을 지켜나갔다. 이런 행동은 필자뿐만 아니라 동해 청원에 서명했던 10 2043명의 한인들을 완벽하게 무시한 처사였고 더 나아가 미주 250만 한인들을 무시하는 백악관과 국무부의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필자는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으며, 좌절감과 절망감도 느끼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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