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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김의 동해탈환 이야기
2014년 3월 미역사상 처음 다른 나라의 영토 영해의 명칭과 관련된 법안이 통과됐다.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통과된 동해병기 법안이다. 1929년 식민시기에 일제가 국제수로기구(IHO)에 일본해를 등록시키면서 잃어버린 우리의 바다 ‘동해’를 되찾는 선봉에 선 ‘미주한인의목소리(VoKA)’ 피터 김 회장으로부터 ‘동해 탈환’을 하기까지 9전9승의 생생한 비화와 향후 우리 2세, 3세 한인자녀들을 위한 풀뿌리시민운동의 전범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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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 ‘미주한인의목소리’ 탄생

동해백서이야기(9)
글쓴이 : 피터 김 날짜 : 2017-11-30 (목) 12: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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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비롯해 은정기와 이준호 등 5명의 이사들이 동참을 해 드디어 20121219 일 사단법인 미주 한인의 목소리(Voice of Korean American)’를 공식 등록했다. ‘미주 한인의 목소리의 최종 목표는 2017 년 국제수로기구 회의에서 동해 병기안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3단계 목표(1. 미국 50개주 모든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한다 2. 동해 병기에 대한 미국 공식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바꾸어 놓는다 3. IHO 회원국 공식 입장을 동해 병기를 찬성하도록 바꿔 놓는다)를 수립했다. 그리고 3단계 목표에 대한 세부적인 전략과 행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으며 그에 따르는 예산과 단계별 마일스톤도 치밀하게 확립해 나갔다. 최종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10여명 정도의 풀타임 인원이 필요했으며 4년 동안 적어도 40억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매우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동해 병기 사업 계획서가 완성된 것이다.

 

상당한 액수의 예산이 필요함을 인식한 필자는 한국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 연락해 동해 병기 시민운동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회의를 하기로 했다. 대사관 직원 5명 가량이 모인 회의실에서 동해 병기 캠페인을 위한 사업 계획서를 발표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대사관측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마지못해 한 명의 대사관 직원이 한국 외교부의 해양영토 과장을 연결시켜 준 것이 전부였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필자는 임원들과 함께 기자 회견을 열고 동해 병기 캠페인을 위한 사단법인 미주 한인의 목소리 출범식의 탄생을 알렸다. 20131 16 , 워싱턴 지역 기자들과 일부 특파원들이 참석한 기자 회견에서 필자는 사단법인 미주 한인의 목소리의 출범을 알리며 최종 목표와 그에 따른 3 단계 목표,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적인 전략/행동계획/예산/조직/마일스톤을 상세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은듯 보였다. 과연 사업 계획서에 따라 시민운동을 진행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疑懼心)은 있었지만 그래도 백악관 청원 운동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던 필자가 한다는 일이니 어느 정도의 관심은 갖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첨부: 119, 120 페이지).

 

드디어 2013 2월 중순. 필자는 동해 병기 캠페인 사업 계획서를 직접 손에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동북아시아 역사재단을 포함해 여러 기관과 단체들에 연락을 해봤다. 그러나 미주 동해 병기 캠페인에 관심을 갖고 예산을 지원해줄 만한 곳은 없었다. 필자는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연결시켜 준 외교부 해양영토과 관계자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해양영토과의 유복근 과장은 선뜻 필자와의 만남을 반기는 듯 보였다. ‘미주 한인의 목소리의 임원 중 한 명이었던 우철형과 함께 외교부를 방문하게 되었다.

 

우철형 회장은 오하이오주 데이톤에서 한인 회장을 지냈던 필자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우철형 회장 역시 박 대통령 취임식 때문에 한국 방문을 했고 필자와 함께 외교부에 들어갔다. 2013년도에 외교부 해양 영토과의 예산이 28억 정도 이미 책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의 기대는 컸다. 왜냐하면 영토 해양과는 독도와 동해 및 위안부 이슈를 책임지는 부서였기 때문이었다. 기대에 찬 필자는 유복근 과장과 다른 외교부 직원들에게 미주 한인의 목소리의 동해 병기 사업 계획서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필자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유과장은 회장님! 정말 이렇게 사업계획서대로 하면 되겠네요. . 도와 드리겠습니다. 다음달에 제가 워싱턴에 들어갈테니 그때 세부적인 회의를 하도록 하십시다. 워싱턴으로 귀국해서 기다리십시오.”

 

확실한 예산이 있있던 해양 영토 과장이 우리 일을 도와준다니 필자는 ! 이제는 됐구나하고 매우 흥분되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유과장은 동북 아시아 역사 재단에도 연락을 해 미팅을 잡아주었다. 필자는 기쁜 마음으로 재단을 찾아가 사무총장과 직원들에게 동해 병기 사업 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동북 아시아 역사 재단은 도와줄 예산이 전혀 없다고 먼저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재단은 만약 외교부가 나서서 예산을 지원한다면 자기네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유과장은 필자에게 다시 연락해 저녁 식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좀 더 자세하게 사업 계획을 논의했다. 적극적인 외교부 관계자의 관심에 필자는 자신감 넘치는 마음으로 다시 미국에 돌아왔다.

 

필자는 즉시 미주 한인의 목소리임원 회의를 소집하고 외교부에서 지원이 들어오기 전 모든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 주일이 지나고 2 주일이 지나가도 외교부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필자는 유복근 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유복근 과장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회장님, 제가 워싱턴에 갈 수도 없고, 미주 동해 병기 시민 운동 지원도 힘들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었지만 유과장은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는 듯 했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아무래도 윗선에도 예산 지원 승인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젠 어쩐단 말인가? 철석같이 믿고 예산 지원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동해 병기 사업 계획서 안에 확정지었던 우리의 행동 계획들은 어찌 한단 말인가? 무슨 수로 아무런 지원 없이 이 계획들을 행동으로 옮긴단 말인가?’

정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리하여 필자는 임원들과 오랜 논의와 고심끝에 동해 병기 시민 운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바쁜 사회 생활을 하며 따로 시간을 내서 동해 병기 시민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예산도 없이 어떻게 막강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동해 병기를 성공 시킬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필자의 아들 크리스가 꿈속에서 큰소리로 ‘Sea of Japan(일본해)’을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것이다. 필자는 그날밤 한숨도 못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앞으로 누가 이 중요한 대사(大事)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미주의 우리 한인 23세들은 영원히 동해란 바다 이름을 배울 수 없게 될텐데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민과 갈등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난 필자는 인생의 중대 결정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필자는 긴급 임원 회의를 소집하고 크게 부르짖으며 호소했다.

동해 병기 시민 운동은 우리 미주 한인의 목소리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 아무도 못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너무 야심찬 출발을 했고 예산 확보를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의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의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하도록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예산은 임원들 사재로 충당합시다. 비록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나의 전재산을 내놓겠습니다. 우리 한번 해봅시다.”

 

대부분 임원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이같은 선포 후 필자의 시민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따라 올 사람은 따라오고 떨어질 사람은 떨어져 나가라는 완강한 태도를 고수했다. 필자의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되니 은정기와 이준호 두 사람을 뺀 다른 임원들은 동해 병기 캠페인에 대해 소극적으로 돌아서더니 그 후 별 도움을 주질 않았다. 그리고 끝내 그들은 미주 한인의 목소리에서 영구히 탈퇴(脫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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