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바람 꼭 이루렵니다”

‘조선(북측) 금강산 현지 관광 조장’
통일 운동하는 분들 중에는 “불공평하다”
일반 분들은 “신기하다” 하십니다.
저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는 운동권도 아니었고,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상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되었는데, 2003년 26세에 관광과를 나온 절친 덕분에 금강산 현지 가이드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았고 저는 그냥 입사 지원을 했습니다.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관광객들이 급증할 때였습니다.
몇 개월 준비하고 2004년 2월부터 현대아산 협력업체에 입사해 금강산 현지 관광 조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고용이 아니어서 24시간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근무해도 급여가 100만원 조금 넘었던 것 같습니다. 잠은 컨테이너에서 자고 식사는 시간에 쫓겨 급하게 먹어야 되며 신입이라 매번 정상까지 가야했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머리에 뿔’ 달린 괴이한 북측 사람들이 아닌 순박하고 순수하고 눈빛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온정리 마을에 살고 있는 환경관리원 중에는 ‘오빠’라고 불렀던 친한 환경관리원도 생겼고,
“조장 힘드나?” “조장 힘내라”
“조장 생일이었지?” “생일 축하한다”라고 말해 주었던 북측 출입국관리소 통검 선생님도 생겼습니다.
이제 산 타는 것도 익숙해지고 신입 딱지를 좀 떼려고 할때 북측 금강산관리소에서 현대아산의 관광 멘트집을 문제 삼아 그걸 만들었던 반장 두명하고 신입 기수였던 저를 하루 아침에 금강산에서 추방했습니다.
2004년 6월 10일 나오는 날 통검선생님께 물어봤습니다. 그 때는 잠시지만 서로 적대적으로 되더군요…분단의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꼭 다시 금강산에 들어올 거에요.”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나왔습니다.
“잘 가라” 하시더군요ㅠㅠ
현대아산이 반장 두명은 풀었는데 저는 협력업체 직원이고 신입인지라 풀지 않았습니다.
속초에서 한 달정도 기다리다 서울 사무실로 와 관광 사업부와 개성공단 출퇴근버스 인솔자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항상 금강산에 가 있었지요. 간절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남북대학생 통일 모꼬지 사업을 하는 남북교류협력단체 지우다우(사단법인 지금우리가 다음우리를)에 입사했습니다.
금강산에 다시 가려는 생각만으로 지우다우에 들어갔습니다.
지우다우에 들어가서 바로 11월 대학생 금강산통일모꼬지 행사 때 관광객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쉽게도 출입국 관리소에서 그 통검 선생님을 못 만났습니다.
다음날 산에서 환경관리원분들과 만나고 통검에서 발칵 뒤집어졌지요. ㅎㅎ
산에서 환경관리원분들은 나중에 정조장 추방 된거 알고 나서 “정조장은 그럴 사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저한테 그러셨습니다. 감동(感動)이었지요.
27살 순수하기만 했던 저는 산에서 환경관리원들 앞에서 통행검사소 통검소장 앞에서 억울하다고 울구불구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그날 이후 현대아산에서 금강산 입경 신청을 안 받아주었습니다. ㅠㅠ
금강산 출입경 관리는 현대아산에서 독점했었으니까요. 지우다우에서 유동호 대표께서도 풀어보려고 엄청 노력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고…
다시 가나 했더니,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2010년 5.24조치로 남북 교류가 전면 단절 되고 이렇게 시간만 흘렀습니다.
갑작스러웠던 저에게 닥친 고난들이 많이 힘들었지만 북을 원망하거나 북쪽 사람들을 탓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현대아산의 멘트집이 상호 존중적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긴 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북을 비방(誹謗)하는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어떻게든 금강산에 다시 가려고 노력했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움직여야 되는 것인지 금강산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알아차리게 되었고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분단 조국에서 살고 있구나…
저는 단순했습니다. 제가 혹시라도 북녘에서 만났던 환경관리원들과 통검분들께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금강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만은 변함 없습니다.
지난 시간 돌이켜보면 금강산에 가게 된 것도 그렇고, 북녘 동포들을 만났던 것도 그렇고, 위기 속에서 통일을 염원하게 된 지금의 숙명들이 그냥 존재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17년의 시간들은 흘러 흘러가고 있지만, 아직 젊으니 소망했던 ‘통일’의 바람들 꼭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 아자아자! 다시 가자! 금강산!
글 사진 정성혜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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