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2011년 10월 20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발루얀샬락'체육문화궁전. '한국의 해'폐막기념 공연장 입구는 현지 K-POP팬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한국의 혼성 그룹 '에이트(8 eight)'와 손호영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이들은 공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순서대로 좌석표를 받아서 질서 있게 입장해달라는 주최측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서로 먼저 입장할려고 몸싸움을 벌이기 까지 했다. 이들의 모든 신경은 이미 온통 공연장안에 가 있는 듯 했다.
기자는 군중들 틈 속에 있다간 질식할 것 같아, 좌석표 받는 것을 포기하고 프레스 카드를 보이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벌써 대부분의 객석이 차 있었다. 그만큼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
기념식과 전통문화공연, 패션쇼 등의 순서가 지나가고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케이 팝(K-POP) 무대가 시작되었다.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목소리로 환상의 하모니를 선보이고 있는 혼성그룹 '에이트(8eight)'와 가수 겸 배우이자 MC로 활약하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 손호영이 화려한 무대를 선사하자 현지 K-POP팬들은 열광하였다. 일부 팬들은 좌석을 버리고 무대 앞으로 몰려가서 야광띠로 ‘8’자를 만들어 보이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핸드폰을 꺼내 무대 위 자신들의 우상을 카메라에 담거나 동영상 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면 2> 지난달 3일(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는 현지의 한류 팬들이 한국 가수의 춤을 따라 하는 케이 팝(K-POP) 커버댄스 행사가 열렸다. 평소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들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웨딩사진을 찍는 곳으로도 유명한 대통령공원에서 열린 이 커버댄스에는 행사를 주최한 '카자흐스탄 K-POP 제너레이션' 회원 50여 명과 관람객 등 200여 명이 참여했다.
현지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주를 이룬 이들 한류 팬들은 알마티의 상징적인 공원에서 두 그룹으로 나눠 K-POP 커버댄스 배틀을 벌이고 이후 함께 모여 소녀시대, 빅뱅, 동방신기,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 한류 스타들의 춤을 흉내내었다. 또한 웨딩사진을 찍던 한 신부가 이 모습에 반해 이들을 따라 춤을 춰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 문화권에 뿌리 내린 한류
카자흐스탄은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되었다. 지난 4월 초, 대통령선거에서 95.5%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또 다시 당선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20년 전 소련의 군부 쿠데타의 실패가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독립국가연합(CIS)이라는 느슨한 연합체의 탄생으로 이어지자 마지막까지 승인 사인을 미루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경제, 안보적으로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인데, 18세기부터 ‘러시아화’의 길을 걸은 카자흐스탄은 의식과 문화적 측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곳에 한류 붐이 일고 있다. ‘소비에트 문화’가 잔존해 있는 현지에서 한류의 선봉장 역은 한국 드라마가 했다. ‘올인’, ‘꽃보다 남자’, ‘대장금’, ‘주몽’, 등이 이 나라 공중파방송을 통해 방영되면서 한류가 일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 모습을 안방에서 시청했던 이 나라 국민들은 뒤이어 한국의 드라마도 시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겨울연가’를 보며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올인’을 시청하면서 그 주제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카자흐스탄으로 출장이나 여행을 왔던 분들은 ‘올인’의 주제가를 알마티 시내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LG 거리’로 불리는 ‘쭘’(백화점) 앞의 ‘아르바트’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LG에서 만든 ‘가라오케’를 틀어놓고 ‘올인’의 주제가를 부를 정도였다.
또한 한국 드라마는 현지에서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손자세대까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우리 드라마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고 대신 경로사상, 가족중심, 사랑 등의 카자흐인들이 좋아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녹아 있으면서도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한류의 물꼬는 4~5년 전부터 카작 텔레콤의 인터넷전용선인 ‘메가라인’이 일반화되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의 가요를 시시각각으로 접한 청소년들에 의해 열풍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지난 5월5일,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한국의 해’ 개막공연에서 3000석의 공연석이 있는 콘서트홀에 한국 연예인을 보기 위해 5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곳의 한류가 ‘열풍’임을 증명했다.
이날 공연을 본 현지 교민 K씨(38)는 “연속극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김준이 속한 아이돌 그룹 티맥스 공연때 환호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메인공연보다 더 흥미롭웠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최대 국영방송국 ‘하바르’에서 방영한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주제곡을 부른 서영은과 주몽의 송일국의 인기도 대단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류가 소비에트 문화 대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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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 15일이 되면 고려인 출신의 락 가수 ‘빅토르 최(Viktor Tsoi)’를 추모하는 행사가 구소련 전지역에서 열린다. 모스크바와 알마티의 ‘아르바트’거리에서는 이날 그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모한다. 그는 요절(夭折)했지만 그의 노래와 예술혼은 아직도 구소련 젊은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류도 ‘빅토르 최’처럼 이 지역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았는데는 성공했다. 거기에 더해 인터넷의 발달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거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한류의 지속성가능성이 무척 밝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속적인 한류확산을 위해서는 보완되어야 할 점도 있음도 지적되었다. 김 게르만 교수(카작국립대)는 “우리나라 10대 들도 한국의 10대처럼 패스트푸드 먹고 자랐고 온라인 환경을 통해 레이디가가의 신보를 시차 없이 바로 듣는 아이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K-POP은 카자흐스탄에서 히트를 치고 있다. 왜냐하면 K-POP이 이미 월드팝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라며 “허나 다양성이 부족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선 방송으로 KBS 월드 채널을 본다”며 “한국뉴스와 드라마, 가요 프로그램을 보는데, 너무나 엇비슷한 걸그룹들이 부르는 천편일률적인 노래들이 판을 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들을 구분하기 어렵다. 한국 여자들은 얼굴이 똑같이 생긴 것 같다”는 뼈 있는 말을 했다.
그래서 한류의 지속적인 확산을 위해서는 창의력을 가진 인력의 안정적인 공급과 끝없는 자기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잡스는 앱스토어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 플랫폼 때문에 그 동안 천대받던 수많은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무릇 한류도 이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이지만 세계인들의 기호와 창의력이 함께 녹아들 수 있는 개방성이 문화 콘텐츠 생산 현장과 유통구조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아시아 1등 전 세계2등이었던 제이팝이 현재 국제화에 실패하고 그저 일본 내수용으로 전락하고만 교훈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한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하면서 겸손과 자기 혁신을 해 나간다면 한류열풍은 소비에트 문화를 대신해 CIS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 카자흐스탄 한인일보(http://haninnews.info)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