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초, 수도 아스타나 시청 앞 광장. 수도의 날을 기념하는 세계음식축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1천여 명의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150미터 짜리 초대형 김밥.
코리안 하우스(고려인 식당)가 준비한 것으로 한글강좌수강생과 시민 170명이 직접 김밥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번 행사에 앞서 한국 문화원(원장 위명재)의 한류홍보 네트워크(SNS)를 통해 지원, 사전 강습과 실습을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카자흐스탄에서 우리 김밥의 인기가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카자흐스탄에서 김밥의 인기는 알마티의 질료늬 바자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농산물을 주로 파는 이곳은 예전부터 고려인들이 두부와 콩나물, 각종 김치, 말린 시래기까지 파는 곳으로 유명한데, 2000년대 중반부터 김밥이 판매되기 시작하였고 현지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25년째 김치를 만들어 팔고 있는 올가(58) 아주머니는 “한-소 수교 후 한국에서 온 선교사가 세운 교회를 다니며 처음으로 김밥을 먹어보았다”며 “카자흐인, 러시아인 등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김밥을 좋아해서 잘 팔린다”고 일러주었다.
▲ 알마티의 대표적인 농산물 시장인 질료늬 바자르에서도 김밥을 사 먹을 수 있다
카스피해의 항구도시로서 카자흐스탄 석유를 카스피해 건너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부터 터어키의 세이한 항구까지 보내는 BTC라인의 사실장의 출발점이기도 한 악타우 라는 도시에도 한식당이 있다.
이곳에도 여러가지 한식 메뉴와 함께 김밥이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데, 한 줄에 무려 2000뗑게(한화 16,000원에 해당)이라는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로 부터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어디 김밥뿐이랴? '까레이스끼 살랏'이라고 불리는 김치는 이미 이 나라 사람들의 미각을 완전정복을 한 상태.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직장 여성들은 퇴근길에 아파트 입구나 동네 슈퍼 또는 직장 근처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당근김치와 잡채를 산다. 독신 여성이라고 밝힌 아이누라(31)씨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후 빵과 뜨거운 차와 함께 저녁으로 먹기엔 안성맞춤이기 때문에 자주 사서 먹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알마티 시내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면 가판대에 김치와 야채를 함께 판매하는 상인들이 진을 친다. 이들은 고려인들로부터 김치와 야채를 공급받아서 팔거나 간혹 직접 판매하는 고려인들도 있다.
▲ 김치축제에서 직접 김치 만드는 법을 선보이는 고려인동포
이외에도 1500뗑게(한화 12,000원)를 넘는 비싼 가격임에도 현지인들은 갈비찜, 불고기, 잡채 등을 상추에 싸서 먹기까지 한다. 심지어 영양탕(이곳에서는 고려인들의 발음을 따라 개장이라고 한다)까지도 즐기는 현지인이 많다. 특히 고위 공직에서 일하는 카자흐인들은 유난히 개장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식당이 성업중인 것은 기정사실.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수천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선을 접하고 있지만 알마티엔 중식당이나 일식당보다 한식당이 훨씬 많다.
여기서 말하는 한식당은 흔히 한국교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을 비롯한 고려인 동포들이 운영하는 식당까지도 포함한 것이다. 이곳에선 한국사람이든 고려인이든 '까레이츠'로 불리고 있고, 김치는 '까레이스끼 살랏', 한식당은 '까레이스끼 레스또랑'으로 불린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 알마티의 시내 거리를 걷다보면 맥도널드 햄버거나 KFC처럼 표준화되고 계량화된 스시빠와 중식당 ‘공주반점’의 체인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식당은 알마티시내 중심가와 시 변두리를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 이름도 ‘로뎀’, ‘한국관’, ‘가야’, ‘리츠’, ‘미요젠’ 등에서부터 ‘만남’, ‘까레야’ 등 각양각색이다.
또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들도 교민들이나 한국에서 온 출장자들에서부터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직원들과 회식 또는 사업파트너와 함께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카자흐인, 러시아인 들이고, 이들이 즐기는 한식 또한 비빔밥부터 삼겹살 구이와 매운 떡볶이까지 실로 다양하다.
▲ 한국음식문화축제에 참가한 한국어과 학생들이 김밥을 싸고 있다.
현지에서의 음식 한류는 카자흐스탄으로의 한국식품 수출액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한식당이 많고 다들 성업중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으로부터 식자재 수입과 한국산 식품류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으로의 식품수출은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류를 비롯해서 라면, 스낵, 프림, 김 등 다양한 가공식품에서부터 해산물까지 수출되고 있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알마티의 어느 슈퍼마켓을 가더라도 초코파이와 한국산 라면과 과자류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한국인이면 누구가 즐기는 새우깡까지 알마티 슈퍼마켓 매장에 진열되어 있다.
물론 아직까지 초코파이처럼 현지인들의 입맛을 확실히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그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용기면인 ‘도시락’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할 때나 직장인들의 점심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이미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기차를 타고 드넓은 유라시아의 초원을 달려보라. 기차가 서는 시골 역에서도 ‘도시락’은 끼오스크(간이판매대)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알마티에서 서쪽으로 ‘따라즈’, ‘침켄트’, ‘끄즐오르다’, 그리고 북쪽으로 ‘아틸라우’까지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지방도시에도 이 도시락 라면이 있다는 것은 초코파이의 인기사실과 함께 국내에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는 얘기.
기자가 올 초여름, 러시아와의 국경 조그만 시골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도 ‘도시락’ 라면을 살 수 있었고 값싼 중국 라면보다 두 배 가까운 가격임에도 없어서 못판다는 상점 주인을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한식당과 한국식품들이 이제는 카자흐스탄의 구석구석까지 진출해 있다. 이 땅에 우리의 음식한류가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 99년, 2002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에 내놓을 한식 중 하나로 선정된 김치의 수출전략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의뢰 받아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 기자는 10여 년 만에 당시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식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현실을 보면서 격세지감과 함께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 카자흐스탄 한인일보(http://haninnews.info)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