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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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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미나리 전문식당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2-05-08 (화) 01:10:25

“여보, 오늘은 미나리로 전을 만들어 봤어요. 밭에서 잘라온 미나리를 믹서기에 갈아 찹쌀가루 밀가루와 섞은 다음 바다에서 잡아온 대합살을 넣고 지글지글 전으로 부쳐봤어요. 살찐 봄 미나리 향기가 군침을 돌게 하는데 어서 들어 봐요.”

아내는 요즘 미나리 요리전문가다. 배추김치처럼 미나리김치를 담아 먹는다. 오이소박에 미나리를 넣어 만든 미나리 물김치는 별미 중에도 별미다. 미나리물김치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춘천막국수 저리가라다. 냉면사리와 메밀국수에 미나리물김치를 가득 부어 먹을 때는 속까지 시원하다. 살짝 삶은 미나리에 양념을 넣어 만든 미나리무침은 보리밥도 꿀맛이 되게 한다.

나는 생선을 못 먹는다. 그런데 미나리가 들어간 생선찌개는 동태국이나 복어국이나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미나리 향기가 비린내를 제거해주고 해독작용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나리 요리는 단연 미나리회다. 나는 비위가 약하여 생선회를 못 먹는다. 밥에다 생선살점을 집어넣고 썩썩 비벼서 회덮밥이라고 먹어대는 아내는 회를 못 먹는 날 바보 취급한다. 그때 마다 내가 들고 나오는 무기가 미나리회다.

“왜 내가 회를 못 먹어? 내가 얼마나 미나리회를 좋아한다고. 날로 먹는게 회라면 미나리를 날로 먹는 거야말로 훌륭한 미나리회가 되는 셈이지. 고추장 된장에 찍어먹는 싱싱한 미나리가 얼마나 고소하다고. 또 있지. 우리는 샌드위치나 햄버거에도 날 미나리를 넣어 먹지 않소?”

 

www.ko.wikipedia.org

우리집은 미나리 전문식당이다. 아침에는 미나리샌드위치, 점심에는 미나리반찬이 총출동하는 미나리한정식, 저녁에는 라면이나 국수에 살찐 미나리를 듬뿍 얹혀서 먹는 미나리 칼국수.

내가 미나리를 좋아하게 된 건 장산(長山) 이성철형 때문이다. 맨해튼에서 델리를 대형식당으로 끌어올려 델리의 신화를 개척한 장산은 아메리칸 드림의 롤모델이다. 뉴저지의 대궐저택에서 살면서 몰래 자선을 펼치는 장산은 한인사회의 숨은 손이기도 하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장산이 황달로 누워버렸다. 병원치료를 받고 처방약을 복용했지만 서서히 죽음의 계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밥 한 알갱이도 넘길 수 없었다. 60대의 몸이 90노인처럼 피골이 상접, 누렇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은행 구좌를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돈 많은 부자라서 사람들이 몰려와 백방으로 비방약을 소개했다. 그때 송곳처럼 귀에 꽂혀오는 한마디가 있었다.

“밭에서 나는 붉은 미나리로 즙을 짜서 마셔 봐요”

붉은 미나리! 종업원을 후러싱으로 보내 닥치는 대로 붉은 미나리를 사들였다. 후러싱 상록회 농장에서 자라나는 밭 미나리는 하나같이 붉었다. 하루에 다섯 잔씩 미나리 즙을 짜서 마셨다. 3일이 되자 기적이 일어났다. 숟가락이나마 밥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12일째 되는 날에는 풀려졌던 눈동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3개월 만에 미나리 즙을 졸업했다. 건강이 완전 회복됐기 때문이다.

미나리 즙으로 죽음을 털고 일어난 장산은 부인과 함께 마라톤에 도전했다. 60대 중반인데도. 지난해에도 장산부부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장산부부는 지금 70대 중반인데도 마라톤을 달리면서 인생을 즐긴다. 미나리는 장산을 구해준 불로초(不老草)가 되어준 것이다.

조선의 선비대신 우암송시열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몹시 굶주려지냈다. 어느 겨울날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양지를 찾아 햇볓을 쬐고 있었다. 발밑에 미나리가 보였다. 우암은 한 잎을 뜯어 씹어봤다. 추위 속에서 자란 겨울미나리는 연하고 향기로웠다.

‘겨울추위를 이겨낸 미나리는 연하고 향기롭구나. 나도 유형지의 시련을 이겨낸 후 남에게 향기를 베푸는 부드러운 삶을 살리라’

우암은 미나리를 뜯어먹으면서 유배지의 겨울을 이겨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 우임은 시조한수룰 지어 임금에게 올린다.

“겨울날 따스한 볓을 님 계신데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님 에게 드리고자

님 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내 못 잊어 하노라“

미나리는 A B C D가 골고루 들어 있는 종합비타민창고다. 그중 A가 풍부하다. 피를 맑게 해주고 해독작용을 해주는 철저한 알카리성 식품이다.

‘우리도 미나리 먹고 인생을 멀리 달려봅시다‘

우리 부부는 돌섬의 30평짜리 조각농장 구석에 미나리 밭을 만들었다. 옆집 김씨농장에서 미나리 뿌리를 얻어다 뿌렸다. 자라는 대로 퍼져가더니 붉은 미나리밭이 됐다. 붉은 미나리는 억세고 질겨 먹기가 힘들었다. 약용은 붉은 미나리여야 하지만 식용미나리는 푸르고 연해야 향기롭다.

 

photo by 김은주

고향의 미나리깡 생각이 났다. 우리 집 앞 동네우물가에는 작은 미나리강(江)이 있었다. 연하고 깨끗하게 자란 파란 미나리들이 가득했다. 미나리 논인데도 사람들은 미나리깡 이라 불렀다. 강(江)인지 광(鑛)인지 알 수 없지만.

‘미나리 깡을 만들자‘

땅을 깊이 파고 물을 채운 후 미나리를 옮겨 심었다. 미나리강(江)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물속에 잠긴 미나리들은 삭아가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미국은 쌀도 밭에서 재배하는 나라다. 미나리도 그런가 보다.

얼른 미나리강을 메워 버렸다. 음습하고 그늘진 곳을 찾아 한 뼘 깊이로 판 후 미나리를 옮겨 심었다. 옴 지락 옴지락 예쁘게 올라오더니 푸르른 미나리 숲이 돼버렸다. 미나리 밭을 하나 더 만들었다. 우리는 미나리 밭이 두 개나 된다.


미나리는 겨울에도 자란다. 눈보라에 움 추려 있다가 날씨가 포근한 날에만 살짝 자라준다. 추위를 견뎌낸 겨울미나리는 더 연하고 더 향기롭다.

다른 농작물도 마찬가지지만 미나리는 화학 비료를 줘야 한다. 유기농 유기농 하는데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연 속에서 자생하는 자연생 식물들은 유기농비료만 줘도 된다. 개량종들은 면역이 떨어져 유기농만으로는 안 된다. 밭에서 키우는 농작물들은 이미 자연을 떠나서 인간의 손때가 묻은 개량종들이다. 개량종들은 면역성이 약해서 무기농 화학비료를 줘야 한다.

옆집 김씨농장은 일편단심 유기농이다. 여름 내내 흙비료만 퍼붓는다. 유기농비료만 먹고 자란 무배추 양파 미나리는 노로꼼한 빛깔에 작고 억세다. 영양실조로 오는 발육부진인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시비(施肥)한다. 파종할 때만 흙비료를 주고 이후부터는 화학비료를 준다. 처음에는 질소, 한창자랄 때는 인산, 익을 때는 가리를 줘야 한다. 미국 화학비료는 종합비료라서 한 가지를 계속 줘도 된다.

화학비료를 먹은 농작물들은 검푸르게 쑥쑥 커간다. 우람한 놈이 열매도 향기롭고 영양가도 가득하다. 우리 집 조각농장에는 금년에도 15가지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그중 으뜸은 미나리다. 우리집 농사의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은 미나리인 셈이다.

미나리는 연하고 향기로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미나리를 먹으면서 나는 변비와 춘곤증이 사라지는 체험을 했다. 나는 변비약을 먹고 포도주를 마셔야 했다. 이제는 비싼 돈 주고 포도주를 살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춘곤증에 시달렸다. 봄만 되면 오전 내내 조는 병든 병아리였다. 그런데 밥상에 미나리가 오르고 난후부터 머리가 상쾌하고 몸이 거뜬해진 것이다. 앉아 있어도 몸이 가볍게 된걸 알겠다. 아내가 재촉한다.

“여보 당신도 미나리 먹고 몸이 거뜬해 졌으니 방안에 앉아 있지만 말고 바닷가로 나가서 뛰어 봐요. 장산선생님처럼 마라톤에 도전해보란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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