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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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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의 멋진 연인들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4-08-09 (토) 14:35:47

 

해변을 따라 돌섬의 보드워크를 걷고 있었습니다. 앞에 있는 벤치에서 두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돌섬의 멋진 연인들이로구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 보입니다.

 

나는 아름다운 해변의 로맨스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가던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도 나를 보고 움찔했습니다. 불장난 하다가 들킨 어린애들처럼 당황해 했습니다. 한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돌섬은 여간해서 한인들이 안 오는 곳입니다. 이미 눈이 마주쳐 버려 피할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동네 노인아파트에 사는 이아무개입니다. 한 달 내내 걸어 다녀도 한인 동포를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은 한꺼번에 두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우리는 후러싱에서 놀러온 외사촌 남매간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인(戀人)사이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실망했습니다.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늙은 연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73살 할아버지입니다.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할머니는 더 늙어 보였습니다. 황혼에 만난 로맨스그레이라서 아름다워야 하는데 추해보입니다. 왜, 그럴까? 5년 전 생각이 났습니다.

 

롱아일랜드에 간 김에 은영이를 만났습니다.

 

“목사님, 요 근처에 밴더빌트의 별장이 있어요. 오신 김에 보고 가시지요.”

 

대서양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호수로 껴안고 있는 곳에 별장이 있었습니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6백만평의 대지위에 하얀 대리석건물들이 그림처럼 숨어 있습니다. 150년 전 철도재벌 벤더빌트가 젊은 연인을 위해 지은 호화별장입니다. 벤더빌트도 가고 젊은 연인도 가고 지금은 정부가 관리하는 관광명소가 됐습니다. 우주관 철도박물관을 안내하는 은영이가 벤더빌트의 연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가서 커피 마실데가 없을까?”

 

“동쪽으로 15분만 드라이브 하면 노스포트(North port)에 와인컨추리(Wine country)가 있어요. 세계적인 와인관광명소이지요. 그런데 목사님이 와인을 마셔도 괜찮을까요?”

 

“하하하, 난 와인을 마셔도 되는 목사야. 심장병을 위해 와인을 마시라는 처방을 받았거든.”

그곳에는 30개의 와이너리(포도주공장)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일 고급스럽고 멋져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테이블에도 스탠드에도 백인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한잔에 30달러짜리 백포도주로 주세요”

 

일부러 고급을 시켰습니다. 포도주가 나오자 은영이가 속삭였습니다.

 

“우리 러브샷으로 해요.”

 

잔을 든 오른팔로 역시 잔을 든 은영의 오른팔을 감았습니다. 팔을 감은채로 마시니 남녀의 얼굴이 다을듯 합니다. 연인의 입술처럼 감미로운 포도주가 입속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입안을 향기롭게 맴돌더니 조금씩 조금씩 목줄을 타고 내려갑니다. 나는 금방 포도주 향기에 취해버렸습니다. 벨사이유의 연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꿈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박수소리가 들렸습니다. 백인 손님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는 겁니다.

 

“짝짝짝짝! 멋진 연인들입니다“

 

그들은 은영이의 미모에 반한 모양입니다. 고교시절 배구를 한 은영이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탤런트 출신입니다. 결혼한 40대인데 아기를 낳지 않아 20대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찬입니다. 보다시피 나는 70 늙은이고, 은영이는 나보다 30살이나 어린 젊은 여인입니다. 여러분들처럼 젊은 남녀끼리거나, 아니면 할머니 할아버지끼리 비슷한 연배가 어울려야 멋있지요. 우린 언밸런스인 걸요.”

 

“아닙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늙은 남녀가 같이 있으면 갑절로 늙어보여 추하게 생각하지요. 젊은 여인과 함께 있는 늙은 남자가 멋집니다.”

 

“그러면 할머니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늙은 남자에게 마저 버림받은 늙은 여자들은 갈데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늙은 여자는 젊은 남자와 짝을 이루면 됩니다. 그러면 상궁처럼 늙은 할머니들도 젊고 예쁜 공주가 되어버리지요.”

 

“그런데 어떤 젊은 아가씨가 할아버지에게 가고, 어떤 젊은 청년이 할머니에게 갈까요?”

 

“돈만 있으면 줄줄이 따라붙습니다. 아니면 실력과 덕망이 있는 존경의 대상이 되던지...”

 

은영이는 나에게 가끔씩 픽션을 배우는 글동무입니다. 딸처럼 허물없는 사이입니다. 유부녀이구요. 난 유부남 할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백인들로부터 “멋진 연인들”로 박수를 받는 바람에 기분이 얼떨떨해졌습니다.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처럼 우리는 카페를 빠져나왔습니다. 집에 와보니 아내가 저녁밥상을 차려 놓은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뜨거운 정성으로 보글보글 끓여낸 청북장에서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난 괜히 제발이 저려 입이 무거웠습니다. 아내가 우스개 소리를 꺼냈습니다.

 

“오늘 TV를 보니 50살 연예인이 23살 연하여성과 결혼했더라구요. 할머니와 사는 당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청북장을 들면서 아내의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아니오. 청북장과 마누라는 오래 묵을수록 깊은 맛이 나게 마련이오. 오늘 따라 청북장 맛이 기가 막히군.”

 

아내는 행복해했습니다.

 

한달전 장인이 잠들어있는 롱아일랜드의 파인론 공원묘지를 찾았습니다. 성묘를 끝내자 둘째딸 은범이가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엄마 아빠, 외할아버지 앞에서 사진 찍어요.”

 

셔터를 누르면서 은범이가 주문했습니다.

 

“엄마아빠의 젊은 연인시절처럼 멋지게 포즈를 취해주세요. 자, 찍습니다. 하나둘...셋”

 

70 넘은 우리부부는 젊은 연인 흉내를 내다가 그만 NG를 내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깔깔 웃는 바람에 나는 뒤로 벌렁 넘어져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하하하 호호호...얘야, 다시 찍자“

 

“아니에요. 이미 찍어버렸어요. 그런데 실수하고 찍은게 엉뚱하게도 명품사진이 돼버렸네요. 자 보세요. 천하에 둘도 없는 멋진 연인들 모습 아닙니까?”

 

그 사진을 보내드립니다.

 

 

 

 

 

나는 오늘도 돌섬해변을 나가 보드워크를 걸었습니다. 외사촌 오빠라고 하면서 사랑을 속삭이던 할아버지 할머니 연인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만나서 이 말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인관계를 중단하세요. 그 대신 두 분이 결혼을 하는 겁니다. 늙은 할아버지와 늙은 할머니가 나누는 연인 모습은 보기에 추합니다. 그러나 노부부의 모습은 어느 젊은 연인커플보다도 아름답습니다. 노부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연인들이니까요.”

 

그러나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혹시 두 노인이 결혼하여 카리브해로 신혼여행을 떠난게 아닐까? 호화여객선 크루즈를 타고 말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53:07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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