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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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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자친구들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09-14 (수) 12:00:58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친구가 다섯이라고 밝혔습니다. 돌섬에서 은퇴를 즐기는 등촌은 찾아오는 손님들이 연락부절이니 친구가 많겠지요?”

“고산이 노래한 오우가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탄식입니다. 고산이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를 때는 주변이 모두 친구였겠지요. 그러나 유배지(流配地)로 쫓겨나 귀양생활을 하게 되니 그 많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 고산은 홀로 강상에 배를 띄우고 변화무쌍한 인심을 슬퍼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지내야 했지요.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 같은 자연은 배신도 없고 변심도 없으니 말입니다.”

난 고산처럼 자연을 친구하고 노래할만한 문필(文筆)이 못된다. 대형교회를 목회하다가 은퇴했다면 유명 목사들이 모두 내 친구였을 것이다.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라는 책을 펴냈으니 목사들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

금년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돌섬(Far Rockaway)을 다녀갔다. 멀고먼 바위길(Far Rockaway)을 찾아 자원방래(自遠訪來)했으니 죽마고우가 찾아준 것처럼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비치를 걸으면서 우정을 나누고 갔다.

나는 그들이 떠나가 버린 자리에 서서 친구를 세어본 적이 있었다. 내 벗이 몇이나 될까? 곰곰이 따져보고 세어봤지만 외로움만 남을 뿐이었다. 나에게는 친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홀로 홀로 나 홀로/ 이 넓은 바다에 나 홀로....”

나는 콜러릿지의 ‘늙은 수부의 노래‘를 읊으면서 홀로 바닷가를 걸어갔다. 걸으면 걸을수록 외롭기 만한 돌섬 바닷가. 외로움을 떨쳐버리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주위에 전화 걸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멀리 시카고에 사는 채화자를 불러냈다. 초등학교 동창 채화자 권사.

“돌섬 바닷가에 사는 할아버지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전화야?”

“금고기야 금고기야, 할머니의 소원이란다.”

우리는 언제나 금고기 전화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금고기 이야기. 옛날 어느 바닷가에 낚시질로 먹고사는 늙은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금빛이 번쩍이는 금고기가 잡혔다. 좋아라 하는데 놀랍게도 금고기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를 살려주세요. 그러면 할아버지가 원하는 건 무엇이던지 들어드릴게요. 저는 용왕의 아들이랍니다.”

착한 할아버지는 금고기를 물속에 놓아주고 빈손으로 집에 왔다. 쓸어져 가는 초가삼간 깨진 독옆에 앉아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바가지를 긁어댔다.

“멍청한 영감태기 같으니라구. 고기를 잡지 못하면 굶게 되는데 쌀 한말만 달라고 할 것이지.”

할머니의 성화에 쫒긴 할아버지는 바닷가로 가서 금고기를 불렀다.

“금고기야 금고기야, 할머니의 소원이란다. 쌀 한말만 줄수 없겠니?”

“할아버지, 걱정 마시고 돌아가세요.”

집에 와보니 쌀 한 말이 배달돼 있었다. 쌀 한 말을 소원하던 할머니의 욕심은 한이 없었다. 고대광실 문전옥답 만석꾼 부자가 되고도 배에 차지 않았다. 금고기를 부하로 거느리는 천하의 여왕이 되고 싶다고 할아버지를 졸라댔다.

비바람이 몹시 부는 어느 날 할아버지는 바닷가로 나가 금고기를 불렀다. “금고기야 금고기야, 할머니의 소원이란다. 할머니가 너를 신하로 삼아 천하의 여왕이 되고 싶다는 구나.”

금고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슬픈 눈빛으로 물위를 한 바퀴 돌더니 물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할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게 웬일인가? 고대광실 문전옥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찌그러져가는 초가삼간 깨진 독 옆에 쪼글쪼글 할머니가 쭈그린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화자는 나의 금고기다. 대나무밭에 들어가서 임금님을 욕하고 싶은 사연이 있으면 나는 화자를 불러낸다. 그녀도 마찬가지다. 7년 전에 죽은 남편이 그리우면 전화로 넋두리다. 만나본지 3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전화를 곁에 두고 지내는 친구다.

뉴저지에도 금고기가 있다. 미술가 김복음 권사. 이민 20년 우정인데 변함이 없다. 두 여인 모두 전화우정들이다. 그 옛날 50년대에 유행했던 펜팔처럼.

그런데 정말 가깝게 지내는 여자친구가 있다. 그녀는 1960년대 초에 전설처럼 등단한 목포의 시인이다. 육영수여사의 기고문을 담당했던 재원. 법무장관을 지낸 할아버지는 그 옛날 민주당 최고위원. 검사출신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미술 강의를 하기도한 호남의 명문가 출신이다.

그녀의 이름을 나는 금송희라 부른다. 꽃송이도 시들고 눈송이도 녹아버리지만 영원히 시들지 않는 금으로 만든 꽃송이. 내가 돌섬으로 이사 오기 전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그것도 양식으로. 재벌2세와 미녀연예인 흉내를 냈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알고 보면 그처럼 값싼 데이트도 없기 때문이다.

우선 토 일요일은 뺀다. 비가 오거나 급한 일이 생겨도 취소. 아내를 맨해튼직장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전화하면 그녀가 나온다. 그녀가 도와주는 딸의 가게 문을 열시에 열기에 맥도널드에서 한 시간 여유가 있다. Deluxe Breakfast 하나를 시켜 나눠 먹으면서 커피를 들면 대화가 없어도 즐겁다. 소요 한 시간, 비용 6불 50전.

내가 그녀의 우정을 확인한건 필화(?)사건 때다. 나의 진보적인 글을 비난한 여류시인이 있었다. 모두가 침묵인데 그녀가 공개적으로 방어하고 나섰다. 비록 짧은 성토문(聲討文)이지만 나는 백만원군을 얻은 것처럼 아주 힘이 났다.
금송희 김복음 채화자. 이름을 밝힐수 없는 가명들이지만 이들 미녀 삼총사들은 나의 여자친구들이다.

“남녀 간에 우정이 가능할까요? 처음에는 우정으로 출발하지만 결국은 애정으로 귀결되더라구요. 미국사람들은 걸후랜드 라고 하면 섹스를 해도 되는 여자친구로 생각하던데,”

“내가 여자를 친구 삼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여자는 남자보다 착하고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여자친구의 조건은 까다롭답니다. 첫째 나이가 동갑이라야 합니다. 세 친구는 41년생 동갑내기들이지요. 둘째는 사귀다가도 연정이 생기면 그 순간 절교해야 합니다. 우정의 배신이니까요. 난 세명의 여자친구들과 10년 넘게 사귀어 왔어도 탈이 없었습니다. 지금 70 늙은이가 됐는데 위험한 시절이 다시 돌아오겠어요?”

난 친구들이 없어도 외롭지 않다. 여자친구가 세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비록 전화친구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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