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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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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월척을 때려잡은 아내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10-09 (일) 00:37:58

아내가 좋아하는 TV프로는 ‘동물의 왕국’이다. 동물들이라 영어를 하지 않으니 이해가 쉬워서 좋아한다. 아내가 즐겨보는 건 곰의 연어사냥이다.

産卵(산란) 하러 연어떼가 상류로 올라오면 곰들은 폭포가 떨어지는 물목을 지키고 있다. 하얀 물보라 속으로 연어가 뛰어오르면 곰은 아가리를 벌려 덥석 물어 올린다. 연어가 떼로 올라와 '물 반 고기 반'으로 우글거리면 물속으로 뛰어든다. 쇠칼쿠리처럼 날카로운 발톱으로 연어를 잡아 하늘높이 흔들어댄다. 아내가 감탄한다.

 

www.en.wikipedia.org

“와! 곰이 부럽다. 저 싱싱한 놈으로 연어회를 치고 노랗게 알이 밴 놈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아내는 돌섬에서 여름내 바다사냥이다. 베이(Bay-灣)에서는 꽃게를 잡고 비치가 있는 오션(Ocean-海)에서는 조개를 줍는다. 어디서 버려진 모기장을 주어오더니 매미채를 만들어 새우 잡이까지 나섰다. 검은 돌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새우들을 매미채로 긁어대면 한 웅 쿰씩 잡힌다. 새우젓 새우다. 조각밭에서 자란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새우탕을 끓였더니 혀끝에 감칠맛이 돈다. 진미일미(珍味一味).

금년에 꽃게는 천마리 넘게, 새우는 두말쯤 잡았다. 거의 남에게 돌렸다. 먹는 재미보다 잡는 재미가 더 좋기 때문이다. 9월이 끝나니 그 많던 꽃게들이 슬금슬금 사라져 버렸다. 두 시간을 매달려봐야 두 세 마리 잡기도 힘들다.

“여보, 10월이 됐으니 어부생활을 정리합시다. 대신 가을 농사나 건수하자구요”

우리부부는 무 배추 미나리 월동초가 자라고 있는 조각농장으로 나가서 일한다. 좀이 쑤신 아내는 슬며시 바다로 떠난다. 철이 끝나버려 꽃게도 조개도 없는 빈 바닷가를 쓸쓸히 걷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여보, 비치로 빨리 와요. 물고기가 떼로 올라와서 펄떡거리고 있다구요”

아내가 비치를 걷고 있는데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여느 파도와 달라보였다. 일반적으로 파도는 하얀 물 갈기를 날리면서 푸른 물결 위를 달린다. 그런데 오늘은 수면 아래를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바다 밑을 샅샅이 긁어 올리는 거대한 저인망 그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건 태풍이 몰고 다니는 파도였다. 바다 밑을 긁고 다니던 태풍이 물고기 떼를 만나면 모래밭으로 끌고 와서 내동이 쳐버린다. 그리고 물러가버린다.

수천마리의 물고기들이 펄떡이다가 기절해버린다. 물러갔던 파도가 다시 밀려오자 퍼뜩 정신을 차린 물고기들은 펄떡거리면서 바다로 도망쳐나간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한다. 와! 그 장관이라니! 그건 대형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는 시네막스 체험이다. 아내가 그걸 목격한 것이다. 그게 불과 20분사이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아내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내가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내는 옷을 입은 채로 뛰어 들었다. 손으로 움켜잡았다. 越尺(월척)이 넘는 놈들이었다. 억세기가 장사급인데 미끄러워 잡히지 않았다. 용을 쓰며 쉽게 빠져나갔다. 포기할 아내가 아니다. 두 손 바닥으로 떠서 모래밭으로 냅다 집어던졌다. 모래위에 떨어져 펄떡거리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던져 눌러 잡았다.

곰처럼! 아내는 영락없는 곰이었다. 팔뚝만한 연어를 잡고 咆哮(포효)하는 곰의 모습이었다. 내가 달려갔을 때는 상황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미처 도망가지 못한 한 마리가 모래위에서 펄떡거리고 있었다. 날 잡아 잡수! 하듯.

20분 사이에 열 마리를 잡았다. 35센치 이상이 되는 월척들이었다. 트라이베스 같기도 하고 벙커같기도 했다. 아내는 펄떡거리는 놈을 칼질하여 생선회를 만들었다. 두 마리를 후라이펜에 지글지글 구워 생선구이를 하고.

 

www.en.wikipedia.org 

노인 아파트를 찾아 돌섬에 온지 18개월째인데 별 체험을 다한다. 지난해에는 태풍이 대합을 가마니로 몰아다 주더니 금년에는 물고기를 몰아다 줬다. 출애급한 이스라엘의 광야체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홍해바다에서 태풍이 몰아다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었으니까.

어제는 10월 6일이었다. 책상에 앉아 오후독서를 하고 있었다. 조각농장 옆으로 경찰차가 전 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내가 꽃게와 새우를 잡는 곳인데?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여보, 꽃게를 잡으러 와보니 사람이 죽어 엎어져 있어요. 경찰이 얼굴을 젖혔는데 옷을 단정히 입은 60대 남미계 남자예요.”

폴리스카 와 앰브런스가 달려오고 아파트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왜 죽었을까? 자살일까 타살일까? 심장마비사일까, 실족하여 물에 빠져 죽었을까?”

밤이 지나자 날이 밝았다. 아침햇살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아파트 사람들은 어제 살인사건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신나게 날씨 칭찬만 한다.

“날씨가 좋아지고 있어요. 주말은 80도가 넘는대요. 여름으로 돌아가려나 보죠?”

우리부부는 밭일을 하다가 2분 거리에 있는 살인현장으로 가봤다. 시체도 경찰차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쳐놓았던 녹색 비니루 줄만 늘어져 있었다. 우리부부는 비니루 줄을 밟고 넘어 물가로 내려가 봤다. 꽃게철이 지나간 바닷물위로 가을 하늘이 파랗게 내려오고 있었다. 둘 중에 누가 중얼거렸다.

“하늘도 바다도 맑기만 한데 우리네 인생은 사연이 많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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