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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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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를 울린 도둑이야기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11-29 (화) 07:12:54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자꾸만 눈물샘이 적셔왔다. 목구멍에 걸려 빵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아내가 이유를 물었다.

“인터넷신문에서 본 잠깐 기사가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네”

인터넷을 열어보니 오늘의 인물로 “용감한 고3 이성일군”이 떠있었다. 185센치 키에 64킬로의 전주생명과학고 학생이었다. 아이돌그룹처럼 맑은 귀공자얼굴인데 태권도 3단 합기도 1단으로 전국종합격투기대회에서 준우승. 낙랑공주를 울린 호동왕자의 무용담(武勇談)이 있을 것 같아 계속 읽어 봤다.

11월 18일 그는 3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가고 있었다. 뒤에서 “도둑이야“소리가 들리더니 앞에서 청년이 도망치는 게 보였다. 단숨에 쫒아가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밑에 깔린 도둑이 사정했다.

“난 도둑이 아니야. 가출 한 뒤 하도 배가 고파서 분식집에 들어가서 밥 한 그릇을 훔쳐 먹었을 뿐이라고”

그것도 겨우 5천 원짜리였다. 연민(憐憫)의 정을 느낀 학생은 도둑을 풀어 줬다. 뒤 쫒아오던 식당아줌마가 악을 썼다.

“그 놈은 진짜 도둑이니 꼭 잡아 줘야 해”

학생은 도망가는 도둑을 재차 덮쳐서 잡았다. 27세에 박씨라는 성을 갖고 있는 도둑은 전에 세번이나 유씨 아줌마의 분식집을 털었다고 한다. 절도죄로 2년 4개월간 교도소생활을 한 좀도둑이었다. 도둑을 잡은 학생은 30만원의 포상금을 받고 자랑스럽게 “오늘의 인물”로 선정됐다. 포상금을 받고 활짝 웃는 모습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스타처럼 멋져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다른 기사들을 흝어 봤다. 학교돈 2500억원을 유용하다가 걸려 재판을 받고 있는 유영구총재 기사가 났다. 박원순서울시장의 파격행보(破格行步)도 계속되고 있었다.

아내와 커피를 마시는데 조금 전에 읽은 도둑기사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중학교 때 읽은 “레미제라불”의 장발쟌이 오버랩 되어 다가왔다.

빵을 달라고 보채는 굶주린 조카들을 보다 못해 장발쟌은 집을 나선다. 빵 몇 조각을 훔쳐 도망치다 잡힌 장발쟌은 감옥에 들어간다. 19년 감옥생활 끝에 출옥하지만 전과자라서 갈 곳이 없다. 미리엘 신부 집에서 환대를 받은 장발쟌은 배은망덕하게도 은촛대와 은수저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잡힌다.

‘빵 몇조각 훔치고도 19년을 살았는데 은촛대를 훔치다 잡혔으니 이제 나는 감옥에서 평생을 무기수로 썩겠구나’

절망하고 있는데 뒤 쫒아 온 미리엘 신부가 엉뚱한 증언이다.

“순사양반, 저 친구가 갖고 있는 은붙이는 훔친 게 아니라 내가 준거요. 그런데 빠트린 게 있어서 주려고 쫒아왔어요. 친구양반, 내가 은대야 까지 가져가라고 했는데 왜 그냥 갔지? 자, 마저 가져가시오“

미리엘 신부의 재치 넘치는 사랑으로 아슬아슬하게 풀려난 장발쟌은 감복 또 감복,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 후에 비구시의 시장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장발쟌의 휴먼스토리를 읽으면서 어린 나는 얼마나 울었던가?


www.en.wikipedia.org  

분식집의 도둑 박씨가 장발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빵 몇 쪼가리를 훔치다 잡힌 장발쟌이나 5천원짜리 분식을 훔쳐먹다 잡힌 박씨나 레미제라불! 불쌍한 도둑들이다.

장발쟌을 구한 사람은 미리엘 신부다. 한국에는 미리엘같은 성직자가 없단 말인가? 한국은 지금 개신교나 카톨릭이나 세계일류다. 한국개신교는 세계 15대 대형교회를 갖고 있다. 카톨릭도 만만치 않다. 겨우 3만 명이 사는 내고향 안중에는 중세기의 성곽(城郭)처럼 웅장한 성당이 있다. 5천명이 모인다. 신자도 목사도 신부도 넘쳐나는 게 한국사회다.

한국에도 미리엘 신부가 많다. 그런데 한국의 미리엘 신부들은 좀도둑이 아닌 대도(大盜)를 좋아한다. 개신교의 “라이온 일병구하기“는 좀도둑 박씨가 아니다. 2500억원을 꿀꺽 삼킨 대도 유영구 총재다.

유영구총재는 명지대학창설자로 유명한 유상근장로의 아들이다. 아버지 잘 만난덕분에 명지그룹총수가 됐다.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아 장로까지 됐다. 한국프로야구협회 총재도 지냈다. 한국의 대형교회가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모시는 재벌장로인 것이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명지대학교는 등록금 비싸기로 전국 1위의 악명을 떨쳤다. 그렇게 해서 거둬들인 학교 돈 2500억을 몰래 빼돌려 명지건설의 부도(不渡)를 막다가 걸렸다. 공금유용은 개인 착복(着服)과 다름없는 금융범죄다. 이번에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밀가루분식 훔쳐 먹은 좀도둑은 2년 반인데 2500억을 훔쳐 먹고 겨우 7년이라니! 경제정의가 살아있는 미국에서 2500억 원을 유용(流用)하다 걸리면 아마 평생 감옥일 게다. 탈세나 회사 돈 유용 같은 경제사범을 제일 악질(惡質)로 치는 나라가 미국이니까.

유영구장로는 호텔같은 감옥생활을 하다가 모범수로, 8.15특사로, 경제공로자로 우대받아 얼른 나올게 틀림없다. 한국 대형교회들이 “유일병 구하기”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앞당겨질게 틀림없다.

분식집 도둑청년을 구해줄 미리엘 신부는 없을까? 갑자기 박원순 시장이 떠오른다.

비구시장이 된 장발쟌과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두사람 모두 젊은 시절 시련의 세월을 이겨내고 시장이 됐다. 비구시장 장발쟌은 어둔 곳을 찾아다니면서 시정을 펼쳤다. 불쌍한 꼬제트 모녀를 구해주면서 혁명세력들을 돕고 있다.

시민들의 민원카드로 도배한 시장실에서 인터넷영상취임식을 한 박원순시장의 행보가 장발쟌을 닮았다. 박시장이 좀도둑 박씨를 만나러 가면 안 될까? 그러면 레미제라불처럼 감동적인 스토리가 생길텐데? 공상을 즐기는데 아내가 나섰다.

“소설같은 망상 버려요. 장발쟌이 시장노릇을 한 비구시는 작은 타운이라구요. 천만인의 서울시장이 통반장처럼 어떻게 일일이 좀도둑을 찾아다니겠어요. 좀도둑 박씨가 장발쟌처럼 개과천선(改過遷善)하던가, 아니면 5천원짜리 분식집을 털게 아니라 유영구총재처럼 2500억을 빼 돌릴 줄 알아야 해결 될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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