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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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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크리스마스카드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2-01-27 (금) 00:12:37

 

“성탄절이 끝나고 새해 1월이 됐는데 목사님은 아직도 크리스마스카드를 벽에 걸어놓고 계시는군요. 유통기간이 벌써 끝났어요.”

우리집 거실 벽에는 1월인데도 크리스마스카드가 만국기(萬國旗)처럼 매달려있다. 형형색색이 갤러리 기분이다. 그림으로 감상하려고 걸어두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11월부터 메리크리스마스다. 거리마다 캐럴이 흐르고 사람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12월 25일이면 크리스마스 끝이다. 26일이 되면 새벽같이 크리스마스카드를 모아 쓰레기통에 처넣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청소차가 지나가는 거리에 내다 버린다.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달 동안 크리스마스를 준비 했으면 끝나고 나서도 두달 동안은 약효가 남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2월까지 크리스마스카드를 치우지 않는다.

나는 최고의 크리스마스선물을 크리스마스카드로 친다. 그래서 전화나 이메일로 때우지 않는다. 인쇄도 금물(禁物)이다. 펜이나 매직으로 사랑이 담긴 성탄인사를 쓴다.

고향의 어린 시절, 설날이면 세배를 다녔다. 아침차례를 지내고 맨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절을 하고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따라 나이순서대로 세배를 했다. 이틀 동안 안 안팎 3동네를 휩쓸고 다니면서 문전걸식하듯 세배를 했다. 3일째 되는 날은 20리를 걸어 친척어른들을 찾아 뵈웠다.

‘불교에서는 삼보일배(三步一拜)하면서 천리를 가고, 한번에 백팔배(百八拜)와 삼천배(三千拜)를 한다고 한다. 20리를 걸어가 절한번 하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우랴!’

내가 뛰어다니면서 세배를 즐기는 건 삼보일배 흉내를 내느라고 그러는 게 아니다. 소득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엿과 다식을 내놨다. 누깔사탕이 귀하던 그 시절 엿과 다식은 최고급 과자였다. 세배를 받는 친척어른들은 만조백관(滿朝百官)의 하례를 받는 세종대왕처럼 염소수염을 쓸어내렸다.

“새해에는 건강하고 공부 잘해야 한다. 복 받아라”

‘복 받아라’ 는 말끝에 세배 돈을 하사했다. 정말 복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정월 한달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가 ‘복 받아라’였다. 일전 한푼 주지도 않으면서 부도수표 남발하듯 그래도 되는 건가? 어린마음에도 가식(假飾)처럼 들렸다. 이민와보니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50센트를 줬더니 목사님처럼 “갓 불레스”(God Bless"를 하는 게 아닌가? 1달러를 받은 거지는 부흥사처럼 “할렐루야 갓 불레스”를 외쳐댔다.

 

나는 성탄카드나 신년인사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상투적인 인사를 안 한다. 형식과 위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 받으라는 말은 ‘내 가진 복을 너에게 준다’ ‘내가 쓸 돈을 너에게 준다’ ‘네가 아플 때 널위해 눈물 흘리겠다’ 는 사랑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탄카드에 복 받으라는 말 대신 단문(短文)을 집어넣는다. 일본의 단가(短歌)나 단시(短詩)처럼 정다운 문구(文句)를 집어넣으려고 애쓴다. 받는 이마다 달라야 하기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도 보내고 나면 즐겁다.

카드받자마자 걸려온 큰 딸 진명이의 전화.

“아빠 카드 받고 너무 행복해서 울었어요. ‘진명아 축하한다/ 너는 금년에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구나/ 내년에는 너처럼 예쁘고 똑똑한 딸을 낳을꺼야!’라고 썼거든요”

둘째 딸 은범이는 보름 만에 반응. 그 애는 20개월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성탄절 석달 전에 기적적으로 우울증을 탈출하고 직장을 얻었다.

“아빠가 보내주신 크리스마스카드의 문구가 제 마음을 찔러 녹였어요. ‘사랑하는 은범아/ 엄마 아빠는 너 때문에/ 금년성탄이 너무 행복하구나/ 큰일은 배짱으로/ 작은일은 섬세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읽어요. 꼭 저에게 맞는 금언이에요”

 

오는 카드에도 정성이 담겨있다. 매직으로 굵게 쓴 牛步 최병현옹이 보내온 카드.

“祝 聖誕/ 謹賀新年/客地逢節/ 倍恩親...壬辰元旦.......牛步(우보)가 드립니다”

멀리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보낸 크리스마스카드. 중학교 1학년을 함께 다녔을 뿐이다. 사진을 봐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는 나를 五友歌의 一友로 쳐준다.

“친구여! 나의 벗 ‘이계선’과 자네의 모든 가족이/ 건강하고 편안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네!/ 자네가 있어서 항상 든든하고 외롭지 않고/ 행복하였고 쓸쓸하지 않았으며/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늘 가까운 곳에서 느끼면서 지내왔다오/ 진정으로 고마웠네/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더 건강하고/ 힘찬새해가 되기를 바라겠네/ 수웅“

편지 옆에 수상한 수표가 놓여있다. 999불이 넘는 수표가!

뉴저지 알파인에서 장산(長山)이 보내준 카드는 그림이 멋지다. 맨해튼 위로 산타클로스가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데 나를 동화의 세계로 인도한다. 카드를 열어보니 구구절절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등촌! 어느 듯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돌이켜 보니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해였습니다/ 지구상의 큰 변화/ 아랍과 동구권의 정치적 변화/ 금융재정불안으로 세계가/ 불경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둠의 한해였습니다/ 지난해 저에게 베풀어주신 관심과 애정 후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천불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큰 손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롱섬의 향림 변향...그리고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 예쁜 손들이 참 많다. 나에게 보내온 카드들은 복 받으라는 도매금 카드가 아니다. 손으로 짠 털장갑처럼 정성이 깃들어 있다. 카드속에 들어있는 수표는 아내가 벌써 탈취해 가버렸지만 돈 보다 값진 친구의 우정은 카드에 그대로 적혀있다. 그러니 내 어찌 성탄절 지났다고 냉큼 크리스마스카드를 내다 버릴 건가?

2011년은 성탄카드가 전년의 절반이다. 그래도 담겨있는 아름다움은 배가 넘는다. 나는 카우치에 앉아 명화를 감상하듯 카드를 바라본다. 그리고 숨겨진 연애편지를 몰래 열어보듯 매일 카드 하나씩 집어서 살짝 읽어본다. 퀸즈의 만년소녀 영미권사가 보내준 크리스마스카드.


“이계선 목사님께

늘 청년처럼 사시는 목사님의 행복하시고 활기찬 내일이 되시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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