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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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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의 겨울바다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2-02-04 (토) 04:19:41

“목사님, 요즘 돌섬의 겨울 관광은 개점휴업이겠지요? 같은 뉴욕이지만 돌섬은 5도쯤 더 추울 테니까요. 바람소리에 밀려서 지금 전화소리가 잘 안 들리는걸 보니 목사님은 이 춘운 날에도 돌섬의 겨울바닷가를 걷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돌섬 걷기의 매력은 겨울이다. 돌섬의 사계(四季)중 겨울이 가장 아름답다. 겨울이 되면 돌섬은 무인도가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고향의 어린시절, 서쪽으로 6킬로를 걸어가면 아산만이 나타났다. 아산만 푸른 물결 위로 황포돗단배가 떠다니고 그 너머로 섬이 보였다. 무인도였다. 아름다웠다. 그 섬에서 영화를 찍었다. 50년대 말 김지미가 주연한 영화 “산 넘어 바다건너“다.

  

천년을 기다려도 찾아주는 이가 없는 섬 무인도. 그 섬에 가고 싶었다. 어쩌다 어른들만 갈수 있었다. 10명의 어른들이 전세로 빌린 목선에 술통을 싣고 노를 저어갔다. 섬 주변에는 주먹만안 소라와 대합이 지천(至賤)으로 널려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이놈들을 지지고 볶아서 술을 마시면 술통이 금방 바닥났다. 양산박의 두령들처럼 얼마나 근사할까? 김지미가 주연한 영화보다도 더 재미있어 보였다.

나는 그때부터 무인도를 동경했던 모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종현의 “섬”도 아름답다. 그러나 천년의 그리움이 기다리고 있는 섬. 무인도를 나는 더 가고 싶어 한다.

노인아파트를 찾아 화 라커웨이(Far Rockaway)를 찾아와 보니 돌섬은 계절마다 천국이다. 봄에는 조각 밭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꽃게와 조개를 잡는다. 가을에는 해변에서 채취한 해송잎과 보리수열매로 술을 담근다. 우리집 식탁은 일년내내 자급자족으로 풍성하다. 격주로 쓰는 돌섬통신을 읽고 친구들이 찾아온다. 지난해 꽃게 철에는 한꺼번에 25명이 몰려와 꽃게들이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돌섬에 겨울이 찾아오면 개점휴업이다. 비키니미녀들이 여름내 뒹굴던 모래사장도 텅 비어있다. 조석으로 보드워크를 걷던 돌섬 주민들도 얼씬을 안한다. 돌섬의 겨울은 칼바람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자동적으로 무인도가 돼버린다. 그러면 나는 무인도를 찾아 동한거(冬閑居)로 들어간다.

돌섬의 겨울바다를 홀로 걷는 게 나의 동한거 수련이다. 세 시간 동안 해변을 걷는다. 가는 길은 나무판자를 깔아놓은 보드워크 위를 걷는다. 뒤에서 불어오는 등 바람이 사납다. 서있어도 저절로 날라가는 기분이다. 오는 길은 바닷가로 내려가 모래위를 걷는다.

이번에는 앞바람을 뚫고 걸어야 한다. 칼바람에 얼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아프다. 뒤로 걷자! 등으로 바람을 밀어내면서 걸으니 금방 땀이 흐른다. 눈앞에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보인다. 내 발자국을 보면서 걷는게 신기하다. 삼보일배(三步一杯)하면서 서천서역국까지 걸어갔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된 기분이다.

 

갑자기 돌섬의 겨울바다가 동양화로 펼쳐 보인다. 그것도 오리지널 동양화인 먹물로 그린 동양화다. 꽃이 지고 잎이 죽어버린 숲은 희끄무레한 회색이다. 잎이 말라버린 나무들은 검은색이다. 날씨가 음산해서 바닷물도 모래사장도 회색으로 덮여있다. 청전(靑田)이 먹물로 그려낸 한편의 산수화다. 서양화로 그린 총천연색 칼라보다 더 깊고 더 아름다워 보인다.

더 가까이 보려고 해변 숲으로 가본다. 눈앞에 보리수가 서 있다. 붉은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가을 우리부부가 술을 담그려고 열매를 죄다 따버렸기 때문일까? 노래가 나온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더 이상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듣자.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슈베르트는 3년간 보조교사 일을 한것 말고 평생을 백수(白手)로 산 가난뱅이였다. 소프라노 테레사와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보조교사 월급으로는 결혼할 수가 없었다. 테레사가 돈 많은 빵집주인과 결혼 해버리자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가 되어 떠나버린다. 슈베르트는 평생 테레사를 그리워하는 가곡을 만들어 음악 속에서 연인을 그리워 하다가 31살 나이에 죽었다. 그게 유명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3부작이다.

첫 번째가 괴테와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집 처녀”. 들장미 송어를 비롯하여 17곡이 들어있다. 두 번째가 24곡이 수록된 “겨울 나그네”. 보리수 봄의 꿈 우편마차 까마귀 이정표가 유명하다. 세 번째가 “백조의 노래”. 세레나데를 비롯 14곡이 수록돼있다. 피셔의 바리톤으로 들려오는 “보리수”의 후반 절.

“오늘 밤도 찾았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네/ ‘내 곁으로 오세요. 여기서 안식을 찾으세요'

찬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꿈쩍도 안했네

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저곳 헤매도/ 아직도 속삭이는 소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세요‘

피셔의 바리톤에서 연인을 그리워하는 슈베르트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프라노 나나무스꾸리가 부르는 “세레나데”에서는 사랑에 젖은 테레사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명랑한 저 달빛아래 들리는 소리/ 무슨 소리 저기 있어 소곤거리나

우리서로 잠시라도 잊지 못하여/ 잊지 못하여“

3시간동안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었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피셔와 나나 무스꾸리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 맛이다. 그런데 내가 더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가 있다. 지금은 목사가 되어 버지니아에 가있는 바리톤 문형일의 목소리다. 총신 음악과 1년 때 슈베르트의 연가 3부작 55곡을 전부 외워 부른 집념. 서울음대로 옮겨 수석졸업하고 동아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문형일.

목사가 됐어도 노래를 잊을 수 없어 2년 전 워싱톤 DC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낮에는 “물래방앗간 집 처녀” 밤에는 “겨울나그네”전곡을 노래했다. 뉴욕에서 무대를 마련해주면 “백조의 노래”를 포함 3부작 전곡을 노래하겠다고 했는데, 후원자를 모으다가 중단했다. 슈베르트의 연인이 테레사라면 문형일의 연인은 “겨울나그네”다. 전화로 그를 불렀다.

“문 목사님이 워싱톤 DC에서 부른 ‘겨울 나그네’와 ‘물레방앗간 집 처녀’의 녹음테이프를 보내주십시오. 그걸 들으면서 문형일의 뉴욕독창회를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겨울 나그네”가 있어서 돌섬의 겨울바다는 외롭지 않다. 나는 행복한 돌섬의 겨울 나그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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