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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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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에서 만난 허리케인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08-30 (화) 01:11:59

“아빠를 사지(死地)에 버리고 왔다고 은범이가 하도 심통을 부려서 은범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강 전도사 아파트로 피난 가야겠어요. 지금 은범이는 아빠 모시러 가자고 성화인데 어쩌지요?”

7월 20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북상하는 허리케인 아이린(irene)이 뉴욕으로 쳐들어오자 뉴욕시장 블룸버그는 재앙(災殃)을 선포했다.

 

www.en.wikipedia.org

“650억 달러의 피해가 예상되는 대재앙입니다. 파라커웨이, 코니아일랜드, 로우맨해튼, 롱아일랜드 햄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빨리 안전한 지역으로 철수 하십시오”

히틀러의 런던 공습을 알리는 처칠의 목소리처럼 블룸버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나흘 전에 뉴욕을 지진으로 흔들어 댄 게 대재앙의 징조였구나’

사람들은 인류최후의 날을 예비하듯 필사적으로 뛰어다녔다. 집안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모래주머니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창문마다 나무판대기를 덮고 못질하여 태풍이 집안에 못 들어오게 했다. 울타리 펜스도 걷어버렸다.

내가 사는 돌섬은 가장 위험지역인 파라커웨이다. 우리도 서둘렀다. 허리케인이 상륙하면 곧 전기가 나가고 수돗물이 끊길 것이다. 양초, 플래시, 물,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했다. 바람이 못 들어오도록 꼭꼭 창문을 잠가버렸다.

“우리 아파트는 이제 항공모함처럼 견고하니 걱정 없어요. 자동차만 높은 지역으로 피난시키면 돼요. 나는 타이타닉 선장처럼 아파트를 지킬 테니 당신은 차를 끌고 은범네 집에 있다가 허리케인 끝나면 돌아와요”

아내는 타이타닉 얘기를 꺼내자 불길해하는 눈치였다. 함께 피난가자고 졸라대는 아내를 달래 보냈다. 내가 혼자 남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허리케인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아가라와 그랜드캐넌을 비롯하여 웬만한 미국의 명승지를 거의 다 가봤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살 때는 당나귀도 날려버린다는 토네이도까지 구경했다. 허리케인은 아직 못 봤다. 돌섬으로 이사 온 후 2년 가까이 매일 파도치는 바닷가를 거닐었지만 한 번도 허리케인을 볼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허리케인이 돌섬을 찾아온다니! 불감청(不敢請)이지만 고소원(固所願) 아닌가?

“저녁 7시에 허리케인이 올라오면 동시에 전기가 나가고 수돗물이 끊어진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전기는 나가지 않았고 허리케인도 오지 않았다. 심심하여 TV채널을 돌리는데 마침 영화 “타이타닉”이 나오고 있었다.

타이타닉이 물속으로 침몰하자 디카프리오는 수갑에 묶인 채 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여주인공 윈슬렛이 연인을 살려내려고 필사적으로 허둥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아이린(irene) 허리케인으로 아파트가 무너져 내리고 내가 물속에 잠겨 죽어 가면 저렇게 아내가 달려와 울부짖을 텐데’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자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허리케인이었다. 창밖에서는 나무가 무섭게 흔들렸다. 아파트가 몸부림치며 울었다. 우리는 삼층이다. 나는 살며시 문을 열고 아파트 층계를 걸어 내려갔다. 사람이 없어 그런지 유령의 집처럼 고요했다.

아침 8시라 대낮인데도 무서웠다. 태풍이 소리치며 몰려다니는 밖은 더 무서웠다. 아름드리 나무기둥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거리로 한 발짝을 내디디면 태풍에 몸이 날라가 버릴것 같았다. 무서워 얼른 집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나갔다.

‘바닷가로 나가자. 그래야 허리케인을 볼 수 있을게 아닌가? 가다가 바람에 날라 가 버리면 어쩌지? 뽑히는 나무에 치어 죽으면 어쩌지? 경찰에 걸리면 어쩌지? 그래도 나가자. 나가야 허리케인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교통수단이 올 스톱이다. 태풍이 소리치며 몰려다니고 있었다. 차도는 한강수였다. 무릎위로 올라오는 물속을 헤치고 바닷가로 걸어 나갔다. 8분 거리가 오늘은 멀고 험난해 보였다. 태풍을 뚫고 앞으로 나가니 드디어 보드워크가 나타났다.

 

와!

바다에서 허리케인이 하얗게 춤추고 있었다. 그 넓은 바다가 하얀 파도로 덮인 채 몰려오고 있었다. 눈 덮인 태백산맥이 저렇게 장관일까? 산더미만한 파도가 꼿꼿이 선채 달려오고 있었다. 돌섬을 잡아 삼켜버릴 듯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오고 있었다.

 

www.en.wikipedia.org

태풍에 날라 온 모래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려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지만 바람에 밀리지 않으려고 쇠기둥을 꽉 붙잡아야 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음산했다.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다. 그래도 모처럼 얻은 허리케인 구경을 이대로 끝낼 수야 없었다. 견디기로 했다.

 

30분쯤 지나니 경찰차가 지나갔다. 또 30분이 지나자 사람들이 걸어왔다. 그러자 태풍 앞에서도 평온이 느껴왔다. 노도광풍(怒濤狂風)으로 파도치는 바다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껏 태풍과 파도를 감상하면서 바닷가를 걸어 다녔다.

핸드폰을 꺼내어 자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대신 허리케인의 소리를 들려줬다.

“얘들아 파도소리가 들리느냐? 집안에서는 태풍이 무서웠는데 막상 나와서 보니 아름답구나. 가장 아름다운 파도는 거칠고 사나운 허리케인 파도란다. 인생풍파를 만나더라도 세파에 휩쓸리지 말고 전진하는 거야.”

2시간이 지나자 태풍을 헤집고 한줄기 햇볓이 찾아왔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두 사람을 만났다.

“바다를 무척 사랑하는 가 봅니다. 위험한데도 태풍을 뚫고 해변을 거니시다니? 우리들은 재난구제자원 봉사자로 나왔습니다. 기념으로 제가 사진을 한 장 찍어 드리겠습니다.”

아침 7시에 뉴욕을 찾아온 허리케인은 10시에 뉴욕을 떠나버렸다. 3시간짜리 허리케인 쑈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오니 여기저기서 전화다. 그중 동강의 목소리.

“650만 달러짜리 허리케인이 뉴욕을 공짜로 통과해줘 다행입니다. 등촌이 해신(海神)처럼 돌섬을 지키고 있으니 그냥 비켜간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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