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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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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에서 농사짓는 목사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2-07-10 (화) 23:03:12

“목사님의 ‘돌섬통신‘에 나오는 농장이 정주영의 서산농장보다 더 커 보입니다. 서해바다를 막아서 만든 서산농장에서는 쌀만 나오는데 돌섬농장에서는 15종류 넘게 수확된다면서요?”

“그뿐이 아니지요. 서산은 농장이 하나뿐이지만 우리는 두 개의 농장을 갖고 있답니다”

“와! 대단하군요.”

이렇게 해서 찾아온 이들은 돌섬농장을 둘러보고 세번씩 놀란다.

첫번째 간판이 어마어마해서 놀란다. 제1농장의 이름이 “에덴가든”. 제2농장의 이름이 “아리랑가든”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지상최대의 파라다이스 “에덴”. 그 에덴의 동쪽에 한국민족을 대표하는 이름 “아리랑“이 있으니.

 

photo by jennifer EJ Kim

“에덴과 에덴의 동쪽에 있는 아리랑! 멋져요. 목사님이야말로 제임스딘이 주연한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멋쟁이로 사는 스타인생입니다”

두 번째, 농장 크기에 놀란다. 에덴은 17평, 아리랑은 13평이기 때문이다. 손바닥만 한데 ‘에덴농장’ ‘아리랑농장’이란 어마어마한 간판을 내걸다니! 봉이김선달이 기절할 일이다.

세 번째, 가득 자라고 있는 농작물과 오묘한 영농시설에 놀란다.

농장에는 고추 가지 토마토 호박 오이 참외 다수박 부추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오이 호박은 지붕을 만들어줘야 한다. 참외 수박은 기어 다니면서 익는다. 고추 가지 토마토는 위로 자라는 놈들이라 밀집하면 열매가 썩어버린다. 토마토 가지 고추는 거리를 벌려 심어줬더니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잘도 열렸다. 이들 사이로 참외넝쿨 수박넝쿨이 참외덩이 수박덩이를 끌고 기어 다닌다.

오이 호박은 농장 가장자리를 빙 돌려가면서 심었다. 아내가 쓰레기장에서 주어온 철근과 목재로 그것들 머리위로 지붕을 만들어줬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오이와 호박은 지붕위를 기어 다니면서 호박잎새 오이잎새로 지붕을 푸르게 덮었다. 파란 잎새 사이로 애호박 새끼오이가 숨어 자란다. 지붕아래 음습한 곳도 버리지 않는다. 넓은 데는 미나리를, 길고 좁은 곳에는 도라지를 심었다.

 

건축설계(Architecture)를 공부한 둘째딸 은범이가 남자친구 한스를 데리고 왔다. 조경설계사(Landscape Architecture)인 한스는 돌섬농장을 보고 어메이징을 연발한다.

“원더풀! 이건 농장이 아니라 조경예술입니다. 농작물과 시설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파라다이스 에덴’이군요!”

우리집 식탁은 늘푸른 테이블이다. 식사 때마다 농장에서 자란 무 배추 미나리 고추 오이 호박 비츠 파 가지 상추가 요리가 되어 올라온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자기가 만든 요리다. 그래서 시성(詩聖) 소동파도 선박왕(船舶王) 오나시스도 요리 만들기를 즐겼다. 자기가 심어 기른 걸로 자기가 만들어 먹는 요리는 얼마나 맛있을까? 우리부부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를 먹고사는 셈이다.

더 즐거운 건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파종부터 즐겁다. 흙을 파 엎고 삽질을 할 때마다 발바닥을 타고 대지(大地)에서 기(氣)가 올라온다. 그래서 대개 맨발로 일한다. 잡초를 뽑거나 농작물을 만질 때도 손끝에 기(氣)가 잡힌다. 그게 뭔가?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생명의 기가 다가오는 것을! 우리부부는 매일 세번 이상 농장에 들린다. 할 일이 없어도 오래 머문다. 피카소가 자신의 갤러리에 들려 자기작품 감상을 즐기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올해로 농사 3년째다. 2년째 되는 지난해까지는 잘 키우는 법을 마스터했다. 물과 비료 주는 요령을 배운 것이다. 금년에는 병 치례와 싸우고 있다. 농작물과 흙에도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너무 추울 때 씨를 뿌리면 싹이 나지 않는다. 태풍에 바닷물이 올라오면 몰살이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흙에 곰팡이가 생기면서 농작물들이 죽어간다. 다람쥐들이 줄기 밑둥을 갉아먹어 다 죽어가는 단 호박도 살려 내야한다.

“죽어가는 토마토와 부러진 호박 줄기를 살려내는 당신은 농의사예요. 강아지를 치료하는 사람이 수의사(獸醫師)라면 병든 농작물들을 살려내는 당신은 농의사(農醫師)이지요”

아내는 죽은 호박넝쿨에 매달려 지내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난 즐겁기만 하다. 누렇게 죽어가던 토마토 호박이 새파랗게 살아나는 게 얼마나 신기하다구!

돌섬을 찾아온 방문객과 나눈 대화.

“목사님을 보면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의 주인공 임상옥이 생각납니다. 어렵게 지내던 가포 임상옥은 악전고투 끝에 조선제일의 거상(巨商)이 되자 사업을 정리하고 의주 삼봉산으로 은퇴하지요. 산자락에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면서 문학과 우정과 자연을 즐기면서 만년을 보냅니다. 거기서 시집 ‘가포문집(家圃文集)’ 수필집 ‘적중일기‘寂中日記’를 썼습니다. 은퇴후 돌섬으로 들어가 밭농사를 지으면서 ‘돌섬통신’을 써 보내시는 목사님이 임상옥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림없는 말입니다. 임상옥은 성공하여 삼봉산으로 들어갔지만 난 실패하여 정부보조 노인아파트를 찾아 돌섬으로 왔어요. 굳이 비교한다면 삼국지의 제갈공명 흉내를 낸다고 볼 수 있지요. 위(魏)나라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병력으로 수차례 중원을 공략하던 촉(蜀)의 제갈량은 결정적인 순간에 일이 틀어져 장졸모두 피곤하지요. 그는 지치고 부상당한 병사들을 이끌고 멀리 파서지역으로 내려가 둔전(屯田)을 합니다. 위나라에서 알아보니 공명이 군사들과 농사를 짓고 있는 겁니다. ‘아하! 천하의 제갈량이 중원정벌을 포기하고 농사꾼이 돼버렸구나.’

그러나 공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달빛아래서 칼을 갈면서 병법을 가르쳤습니다. 이걸 둔전병(屯田兵)이라 하지요. 난 실패한 내 인생을 돌섬으로 끌고 와서 둔전을 하는 셈입니다. 글을 쓰다가 명상을 즐기다가 피곤하면 밭으로 나와 머리를 식히지요. 그러면 엔돌핀이 솟아나 심신이 상쾌해 진답니다.”

  

photo by Jennifer EJ Kim 

밭일을 하다보면 가끔 고향생각에 잠기게 된다. 흙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농사일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고 논밭으로 달려갔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장정들 틈에서 일하는 전업 농부가 됐다. 뙤약볓 아래 엎드려 논을 맬 때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아팠다. 점심 후에는 나무그늘아래서 한 시간씩 낮잠을 잤다. 북소리 꽹과리 소리에 벌떡 일어나보면 장대를 앞세운 농악대를 따라 일꾼들이 일터로 가고 있다. 눈을 비비면서 뒤 쫒아가던 나는 장대에 매달려 펄럭이는 깃발을 향해 욕을 해댔다.

“제길 헐, 농자천하지대본이 뭐야? 옛날의 노예계급은 사라졌지만,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농사꾼들이야 말로 신판 노예들인걸!”

거기에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써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깃발이 그리운 추억을 타고 펄럭여 오는 것이다. 손바닥 농장이지만 농사일을 해보니 은퇴목사의 제일 즐거움이 (隱退牧師 天下之大樂)은 농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 돌섬 바닷가에서 농사의 즐거움을 누리니 족하지 아니한가?

“에덴의 동쪽”에서 스타가 된 제임스 딘이 조금도 부럽지 않다. 그는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로 지상최고의 부와 인기를 거머쥐었지만 24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돌섬농장 “에덴”과 “아리랑“이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70시골노인이 뒤늦게 슈퍼스타가 된 착각에 빠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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