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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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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의 결혼청첩장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2-09-17 (월) 02:31:49

남자친구와 유럽여행을 다녀온 큰딸 진명이가 에펠탑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파리중심가를 흐르고 있는 세느강변을 걷고 있는데 파란 불빛 한줄기가 우리들 얼굴에 떨어지는 거예요. 너무 황홀하여 불빛을 따라가니 에펠탑이 나타났어요. 에펠탑에서 파리시내를 향하여 라이트쑈를 벌이고 있는 거였어요.

 

www.tour-eiffel.fr

에펠탑으로 올라가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요리를 신청했어요. 장내를 둘러보니 거의가 연인들인데 대개 프로포즈를 하러 온 거예요. 남자가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내어 여자에게 주면 여자는 남자의 이마에 키스를 하면서 남자를 일으켜요. 그리고는 열렬하게 입술키스를 하는 거예요. 테이블마다 프로포즈 세리머니인데 영화처럼 얼마나 아름답고 부러워 보였던지! 허전한 마음으로 창밖으로 눈을 돌려 물끄러미 파리야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 스미스가 양복안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무얼 꺼내더니 슬그머니 저에게 주는 거예요. 작은 네모상자였어요.

'What is that?'

‘You open, Please!’

열어 보니 와! 다이아반지였어요. 결혼해달라는 청혼이었어요. 스미스는 청혼하기 위해서 유렵여행을 택했고 에펠탑까지 올라온 거예요”

    

www.tour-eiffel.fr

딸애는 그렇게 약혼을 했다. 미국은 따로 약혼식이 없다. 프로포즈가 약혼식이다.

“얘야, 에펠탑에서 고급 프랑스요리를 먹으면서 일류로 약혼식을 했으니 결혼식을 시시하게 할수야 없지 않으냐? 지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하자.”

딸애는 아빠가 호화로운 호텔결혼식이라도 시켜 줄줄 알고 흥분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하면 딸에게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해 줄 수 있을까?,

돌아가는 딸애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궁리하기 시작했다. 결혼청첩장을 무진장으로 뿌려 수백명 하객들을 호텔에 불러놓고 나폴레옹 대관식처럼 하면 될까? 돈이 없다. 이친구 저친구 안면 있는 이들을 죄다 교회로 불러들여 웨딩마치를 할까? 너무 시끄럽다. 그리고 청첩장(請牒狀)으로 남에게 부담주기도 싫다. 결혼 청첩장은 초대장이다. 초대장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다.

“정중하게 대우해드리오니 그저 와 주시기만 하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회비를 내야 하는 초대장도 초대장일까? 난 책을 내면서 몇번 출판기념회를 했지만 한번도 회비를 받아 본적이 없다. 결혼 청첩장에 회비액수는 적혀있지 않지만 축의금을 내기 마련이다. 딸애의 즐거운 결혼을 하면서 남에게 부담을 줄 필요가 있을까?

44년 전 내결혼식을 떠올려 봤다. 난 청첩장도 돌리지 않았다. 친척도 사촌만 청했다. 고향 평택에서 하면 일가친척들이 몰려 올것 같아 서울에서 했다. 아내는 한복을 입고 난 입던 여름양복을 입었다. 선물교환도 신혼여행도 안했다. 그래도 우리부부는 45년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오고 있다.

내가 간결한 결혼식을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결혼식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내 어린시절에는 결혼식이 참 귀했다. 그날은 삼동네가 몰려들어 잔치를 했다. 떡국 몇조가리를 넣은 국수가 참 맛있었다. 거지들도 떼거지로 몰려와 하객대접을 받았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주려고 떡 다과 과일을 챙겨 허리춤에 숨겼다. 잔치 집에 가신 할머니가 돌아오기를 우리남매들은 얼마나 기다렸던가!

지금은 결혼식이 너무 흔하다. 먹을 건 더 많다. 후러싱 금강산의 런치스페셜 갈비박스만 해도 옛날 잔치음식보다 훨씬 고급이다. 난 생일도 회갑도 못 지키게 한다. 우리부부가 50불을 들고 미즈미부페식당만 가면 회갑연 이상이기 때문이다. 딸애 결혼식을 어떻게 할까? 진명이가 약혼자 미셜 스미스를 데리고 왔다. 맨해튼 월가에서 일하는 홀란드청년이다.

“아빠, 9월 29일 결혼하기로 했어요.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두셨어요?”

“하객을 가득 채우는 예식장이나 교회에서 하는 대형결혼은 반대다. 청첩장을 돌리면 부조금이 들어와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겠지만 하객들에게 부담이 돼서 좋지 않다. 양가친척만 모시고 후러싱 보타니컬 가든에서 하는 게 어떠냐? 약혼식을 파리에펠탑에서 일류로 했으니 결혼식은 꽃 공원에서 하는 것도 인상적이 아닐까?”

신랑은 굿 아이디어라고 좋아했다. 딸애는 중론에 밀려 억지춘향으로 동의했다.

양가 친척을 살펴보니 우리 쪽은 15명. 신랑쪽도 사촌만 청하기로 했다.

“그래도 알고 찾아오는 친구들은 어떡하지요?”

“부조금을 안 받는 조건으로 허락하면 되겠지”

 


이하 사진 www.queensbotanicalgarden.org

지난 9월 초 우리부부와 딸애부부(?)는 결혼식장을 확인하러 보타니컬 가든을 찾았다. 유료공원이 된 후부터 더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공원 남쪽에 “Wedding Garden"이 별도로 있었다. 관리인이 문을 열어주자 행복의 문이 열리듯 파라다이스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보였다. 꽃과 나무숲, 돌계단과 바위로 결혼식장의 시설들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원두막처럼 작은 신부대기실이 동화의 나라를 연상케 했다. 꽃밭속의 야외결혼예식장이었다.

 

파란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무가지 사이에서는 새들이 축송연습을 하고 있었다. 공원을 수놓고 있는 꽃들 위에서는 호랑나비 흰나비들이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때 꽃숲 사이에서 장끼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녀석은 겁도 없이 우리사이를 걸어 다녔다. 다람쥐도 뛰어나왔다. 길조(吉鳥)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진명아! 실내 결혼식장에서는 사람들만이 축복한다. 그런데 봐라. 여기서는 사람과 짐승, 꽃과 나비, 나무와 새, 그리고 구름이 축복하는구나. 네 결혼식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축복하는 아름다운 결혼예식이 될게 틀림없다!”

 

사무실에 들렸더니 아까 봤던 그 꿩 사진이 벽에 걸려있었다. 실물보다도 더 아름답게 찍었다. 25불에 사다가 돌섬 아파트 거실에 걸어 놨다. 어찌나 아름답고 싱싱하게 찍었던지 액자를 건드리면 액자속에서 꿩 꿩! 소리를 지르며 금방 날라 가 버릴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액자속의 꿩에게 들킬새라 살금살금 몰래몰래 소리 내지 않고 다가가서 꿩 사진을 들여다본다. 아내가 부탁하듯 중얼거렸다.

“9월29일 결혼식장에 이놈이 나타나서 축포를 터뜨리듯 꿩! 꿩! 울어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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