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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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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가고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09-04 (일) 08:09:39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 내 사랑아…”

내가 아일랜드의 민요 대니보이를 흥얼거리자 아내가 소리쳤다.

“아니 당신, 이 무더운 여름철에 청승맞게 가을노래요? 더구나 바닷가에서는 어부들의 노래를 불러야지 웬 산골짝 목동들의 노래예요? 당신이 지독한 음치인건 알지만 음악의 계절감각마저 엉망이군요.”

“모르는 소리 말아요. 당신은 새벽에도 코를 골며 자느라 모르지만 요즘 새벽에 벌써 가을바람이 찾아오기 시작 했다구요. 여름이 가고 있어요. 입추(立秋) 말복(末伏)도 지났고 23일은 처서(處暑)예요. 처서.”

“아니, 며칠 있으면 서늘한 가을바람에 모기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된다구요?”

밤마다 모기향을 피워놓고 여름밤을 자야했던 아내는 되게 반가운 모양이다.

음력 카렌다가 지난 13일 말복(末伏)을 선언해 버렸다. 더위 끝. 음력은 계엄령만큼 무섭도록 정확하다. 말복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새벽부터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피서족들은 언제까지 여름이 계속 되는 줄 알고 지금도 물속에 뛰어들어 첨버덩 물장난이다. 여름이 가고 있구나! 나는 바닷가를 거닐면서 떠나가고 있는 금년 여름을 정리해봤다.

 

www.nycgovparks.org

이번 여름은 뜨거웠다. 방문객들의 열기 때문에 더 뜨거웠다. 많은 친구들이 다녀갔다. 이민생활 22년 동안 찾아온 친구들보다 이번 여름에 다녀간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길산(吉山)처럼 새벽에 달려와서 두 시간 있다가 간 친구도 있었다. 이웃가족들과 함께 스무명이 떼 지어 몰려온 군단들도 있다.

돌섬피서지에서 생긴 일들이 영화처럼 재미있다. 오전에는 포구(Bay)에서 꽃게 낚시를 했다. 낚시줄에 매단 닭다리를 물속에 던지고 기다린다. 낚시줄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게 보이면 꽃게가 닭다리를 물고 있다는 신호다.

아빠를 따라온 어린이들이 달려들어 고사리 손으로 살금살금 조심조심 줄을 끌어올린다. 파란 물속에서 열 개의 하얀 다리로 하늘하늘 발레를 춤추면서 꽃게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고래와 코끼리가 줄다리기를 하듯 조심조심 줄을 잡아당기는 어린이들의 콧잔등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힌다.

“꽃게가 물밑 한 뼘까지 올라 왔어요”

손을 들고 신호를 보내면 아빠들이 달려간다. 매미채를 대각선으로 물속에 내린 아빠는 슬그머니 그러다 잽싸게 끌어올린다.

“앗싸 호랑나비. 꽃게 잡았다!”

어린애들은 고래를 잡은 듯 소리친다. 그러면 엄마들이 달려들어 꽃게를 바케츠에 집어넣는다. 점심때가 되면 꽃게 바비큐파티다. 꽃게를 수돗물에 넣고 20분씩 세 번 걸러내면 속이 하얗게 깨끗해진다. 이놈들을 쪄내어 포도주를 들면서 먹으면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소냐! 신선이 된 기분이다. 꽃게탕으로 점심을 배불리 먹고 오후에는 비치로 옮긴다.

 

www.nycgovparks.org

모래사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물속으로 전진준비. 산더미만한 파도가 삼 겹으로 몰려와 얕은 물가에 하얀 거품을 쏟아 붓는다. 와! 어린애들은 하얗게 깔려있는 거품위를 뛰어다니며 소리친다. 어른들은 파도속으로 뛰어들어 다이빙을 하기도 하고 파도위로 올라타기도 하면서 수영실력을 뽐낸다. 모두가 물을 만난 물고기들이다.

“파도가 위험해요”

물가에서 구경하던 여인들이 소리친다.

“걱정 말아요. 파도가 태산만큼 높아도 물이 얕아서 땅 집고 헤엄치기 이니까”

“정말 그렇게 얕아요?”

물이 얕은걸 알자 여자들도 용감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정장을 하고 물가에 서있는 고종순 권사를 물속으로 불렀다. 그녀는 5일전 8명 틈에 끼어 돌섬을 찾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손주를 포함, 20명의 대군단을 이끌고 다시 온 것이다.

“목사님,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파도가 무서워요”

“권사님은 바다의 묘미, 물놀이의 즐거움을 모르시는군요. 파도에 휩쓸려봐야 물놀이의 깊은 쾌감을 느낀다구요. 헤밍웨이도 허먼 멜빌도 파도의 쾌감이 그리워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가 ‘바다와 노인‘과 ’모비딕’을 쓴게 아니겠어요?”

“맞아요. 파도에 휩쓸려봐야 짠 물맛도 쓴 세상맛도 제대로 알거예요”

고종순 권사는 옷을 입은 채로 파도치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칠십을 훨씬 넘긴 나이라 그녀는 맥없이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파도에 엉켜 쓰러지기도 넘어지기도 하고 짠 물을 들이켜 쾍쾍 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어린애처럼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날 바닷가에 나온 수많은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비키니를 입은 젊은 미녀보다도 더 멋져보였다. 일상복을 입고 물속에 뛰어든 여자는 오직 그녀뿐인데.

지난해 여름 고종순 권사는 남편 춘풍 박상서 장로와 돌섬 바닷가를 찾아왔었다. 춘풍은 비치를 걸으면서 그렇게 바다를 좋아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한 달 후 춘풍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여름에는 친한 분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갔다. 춘풍이 갔다. 나보다 한살 아래인 삼포 김영효 목사가 갔다. 두살 위이지만 친형같은 고향선배 황종천 형이 갔다. 동갑내기 안성기 이종동서도 지난 여름에 갔다. 친하던가 나이가 비슷한 분들이다.

 

www.nycgovparks.org

나는 지금 지난 여름에 가버린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돌섬의 여름 바닷가를 걷고 있는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돌섬 바닷가를. 다행히 금년 여름에는 가버린 친구들이 한사람도 없다. 그럴수록 지난해에 가버린 친구들이 더욱 아쉽다.

‘어떻게 해서든지 지난해에만 죽지 않았으면 금년에도 내년에도 년년세세 오래살 수 있는 나이들이었는데!’

작년 이맘때 돌섬을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거닐었던 그 바닷가를 홀로 걷는다. 친구가 묻혀있는 땅위를 밟고 있는 것처럼 가슴 아프다. 나는 조용히 대니보이를 마저 불러본다. 죽은 친구들의 목소리가 노래에 실려 들려오는 것 같다.

“그 고운 꽃은 떨어져 죽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나 자는 곳 돌보아 주며/ 아름답다고 불러주어요// 네 고운 목소리 들으면/ 내 묻힌 무덤 따듯하리라/ 너 항상 나를 사랑하여 주면/ 네가 올 때까지 내 잘 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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