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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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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요?”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3-05-29 (수) 07:04:56

 

“목사님이 쓰고 계신 ‘소설 김재규’가 궁금합니다. 어디까지 쓰셨습니까?”

 

지난 1월 2일부터 장편소설 “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진도를 물어오는 분들이 많아서 빨리 탈고를 하려고 밤낮을 매달렸습니다. 100페지 까지는 그런대로 써졌습니다. 다음부터는 힘들기만 했어요. 피곤하고 두통만 찾아 왔습니다. 억지로 200페이지까지 썼습니다. 270페이지에서 끝낼 참입니다. 하도 지겨워 쓴 글은 다시 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간 쳐다보지도 않고 푹 쉬기만 했습니다.

 

조영남이 오감도(烏瞰圖)시인 이상 해설집 “이상의 시는 이상 이상이다”를 쓸 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자나깨나 이상 생각에 매달렸답니다. 식욕이 떨어지고 피곤이 몰려오더니 그만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반신불수가 되는 줄 알았는데 살아났어요. 그래 그런지 요즘 TV에 비친 조영남의 재치와 익살이 전만 못해 보입니다.

 

저야 조영남처럼 콘서트나 방송출연할 일이 없지만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5월 16일 새벽에 일어나 다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쓰고 난 자료들을 지워버리다 그만 큰 실수를 했습니다. 원고까지 지워버린 겁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5개월 공든탑이 날라가 버렸습니다. “Ctrl & Z” 누르는 방법을 깜빡 잊어버리고 “저장”을 눌러버렸습니다. 컴퓨터로 10권 넘게 책을 써왔지만 이러기는 처음입니다. 오전 내내 앓아누웠습니다.

 

토마스 칼라일 생각이 났습니다. 7년 걸려 쓴 “불란서혁명사”를 탈고 했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돌아와 보니 원고가 사라져버렸어요. 하녀가 불쏘시개로 원고를 태워버린 겁니다. 그는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했다지요.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써보라는 계시로 받아드려 일어났습니다. 다시 7년을 매달려 불휴의 명작 “불란서혁명사”가 탄생했습니다.

 

변영태의 아들 변해수박사 생각도 났습니다. 롱섬 미녀 변인숙권사의 부군입니다. 10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 연구한 동양철학을 책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원고를 싸들고 맨해튼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돈 가방인줄 안 스페니시가 나꿔 채 가버린겁니다. 변박사는 한 달 동안 누웠다가 일어났습니다. 다시 써보다가 다시 누워 버렸습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겨우 50대 중반에 말입니다.

 

내가 그때 “변영태와 그 아들”이란 칼럼을 써서 망자를 위로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변씨집안과 친해졌어요. 변인숙권사와 아주 가깝게 지내지요. “시인 변영로아들 변천수의 이민 반생기-강낭콩 꽃보다 더푸른 그물결 허드슨강으로 흘렀네-도 써줬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그 꼴이 됐어요.

 

나야 칼라일같은 역사학자도, 변해수박사같은 철학자도 아닙니다. 누워서 괴로워하는 것도 괜히 대가연(大家然)하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일어나 그날 저녁에 있는 “장준하선생 기념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실컷 떠들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아쉬움과 억울함이 남아있습니다.

 


www.ko.wikipedia.org

 

나는 “소설 김재규”를 쓰기 위해 4권의 김재규 연구서를 읽었습니다. 김재규소설도 봤습니다. 수많은 관련기록을 살펴봤습니다. 나름대로 내 스타일을 창안했습니다. 10.26궁정동의 총소리, 12.12전두환 반란은 적벽대전이나 황건적의 난처럼 실감 있는 전쟁드라마로 써보자. 결론은 감옥과 재판을 받으면서 해탈(解脫)의 경지로 들어가는 김재규의 모습을 그려내자. 이게 제가 김재규를 쓰려는 메인 포인트입니다. 사이사이에는 에피소드로 채우려고 애썼습니다. 양념을 치듯 안주를 먹듯 말입니다. 에피소드가 있어야 글이 재미있어요.

 

제가 먼저 번에 돌섬통신으로 보내드린 “장준하와 김재규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김재규소설에 나오는 에피소드이지요. 장태완장군의 가정몰락, 정병주 김오랑가정의 슬픈이야기, 혜은스님이 된 김재규동생 김항규이야기, 궁정동을 다녀간 여인들의 뒷이야기들.... 아픈 가슴으로 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두 날라가 버렸어요. 앞부분 70페이지는 다행이 저장해 뒀더군요.

전 요즘 멍하게 지내면서 고민합니다.

 

1.쓰지 말라는 하나님이 막음인가?

2.더 좋게 다시 쓰라는 채찍일까?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감동스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컴퓨터 전문가 김훈선생이 먼 길을 달려와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도 않은 사인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안 되자 후배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뜯어갖고 갔습니다. 그래도 안 된답니다.

 

컴퓨터가 낡아서 그랬답니다. 하긴 난 10년 넘은 컴퓨터를 중고차 운전하듯이 달래개면서 써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일을 당했어요. 김훈선생에게 고맙기만 합니다. 아내가 맡겨놓은 휘발유 값을 건내 주었더니 펄쩍 뜁니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날 형님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내 동생들 목소리처럼 다정했습니다. 배와 가슴에서 뜨거움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우리 형제들 중에 김훈만큼 똑똑한 형제가 없습니다. 김훈은 와세다(조도전)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입니다. 동경에 사는 아들도 와세다 맨입니다. 선친께서도 와세다(조도전)을 나온 명가출신입니다. 그런데 날 형님으로 부르다니?

 

“책 한권 잃어버리고 대신 형제를 얻었구나!”

 

소식을 들은 3남매들이 오는 주일에 새 컴퓨터를 사갖고 오겠답니다. 아무래도 다음 주간부터 “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요?” 를 다시 써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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