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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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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와 바보온달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3-07-24 (수) 13:27:13

평강공주(平岡公主)와 바보온달(溫達)의 러브스토리를 믿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온달은 바보가 아니라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봐라. 가난뱅이에다 지질하게 못생긴 온달이 무슨 수로 평강공주와 결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랬을 성 싶다.

 

 

‘호동왕자는 적국 낙랑국에 몰래 들어가 천하미녀 낙랑공주를 얻었다. 들으니 고구려 평강왕의 외동딸 평강공주가 천하일색이라 한다. 내 마땅히 평강공주와 결혼하여 장부의 뜻을 펼쳐보리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는 호동왕자처럼 잘생기지도 못했고 학력도 없는 천학비재(淺學非才)다. 고민하던 온달이 무릎을 탁! 쳤다. 바보대작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다! 코미디 바보연기로 평강공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다.’

 

동서고금(東西古今) 남녀노소(男女老少)가 제일 좋아하는게 코미디다. 목사도 코미디설교를 잘 해야 부흥사가 되고 대형교회를 만든다. 코미디중의 코미디는 바보코미디다. 바보코미디는 못생겨야 한다. 이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로 코미디황제가 됐다. 배삼룡은 바보처럼 흔들어 대는 개다리 춤으로 스타가 됐다.

 

온달의 못생긴 얼굴은 코미디에 적격이다. 그런데 바보코미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엎어지고 넘어진다고 되는게 아니다. 머리가 좋아야한다. 웃고 우는 정극연기보다 바보연기가 더 어렵다. 바보연기자들은 사실 바보가 아니다. 천재들이다.

 

온달은 엉덩이 속살이 허옇게 드러나 보이는 거지누더기를 입고 길거리로 나섰다. 꽹과리를 두들겨대면서 바보춤을 추어대자 애들이 몰려들었다. 애들이 따라붙자 평양성 안으로 끌고 들어가 궁궐 앞에서 바보들의 대행진을 벌렸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허구헌날 울기만 하던 울보공주 평강공주가 이 광경을 보고 배꼽을 잡고 깔깔 뒹굴었다.

 

자연스레 공주는 온달의 광팬이 됐을 터. 어쩌구 저쩌구 이런저런 사연 끝에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커플이 탄생된 게 틀림없다. 온달이 바보였다면 어찌 후일 고구려의 대장군이 될 수 있었을까? 바보는 온달이 아니라 온달을 바보로 알고 시집온 평강공주가 아니었을까?

 

 

 

 

▲ 아차산입구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동상 www.ko.wikipedia.org

 

 

13년전 문학행사가 있어서 LA에 간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김남조시인 김소엽시인과 한 모텔에 묵게 됐다. 한국시문학의 측천무후 김남조시인 앞이라 나는 기가 죽었다. 소엽시인은 다행이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아래요 교회계급(?)도 나는 목사요 그녀는 권사라 만만히 생각했다. 그런데 만나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렌의 애가“로 유명한 수덕사의 여승 김일엽의 친정 손녀딸이었다.

 

그래서 김일엽-김소엽이다. 소엽이름의 사연이 나를 놀라게 한 것이다. 그보다도 나를 더 질리게 한건 그녀의 뛰어난 미모 때문이었다. 난 젊었을 때부터 미녀만 보면 괜히 가슴이 떨리는 증세가 있다. 미인은 늙지도 않는지? 그녀는 나와 겨우 2살 차이인데도 나보다 20년은 더 젊어보였다. 주최측의 배려로 우리는 매일 같은 테이블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촌뜨기출신인 나는 고매한 두 여류시인 앞에서 평강공주 앞의 바보온달처럼 기가 죽어 쩔쩔맸다. 그때 날 구해 준게 소엽시인이다. 미녀시인은 화사한 미소로 겁에 질려있는 내 마음을 풀어줬다. 꾀꼬리재담으로 굳게 닫혀있는 내 입을 열어줬다.

 

나는 누가 입만 열어주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떠들어 대는 청산유수(靑山流水)가 된다. 아침식사는 끝났지만 우리들은 커피를 들면서 이야기꽃으로 백화만발(百花滿發)을 즐겼다.

 

난 그때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소엽시인이야말로 평강공주였기 때문이다. 평강공주는 천하미녀다. 평강공주는 장애인이나 바보도 사랑으로 품어주는 따듯한 휴머니스트다. 평강공주는 미련한 바보를 천하명장으로 조련할줄 아는 천재다. 소엽시인이 바로 그런 여인이었다.

 

2001년 9월 9일 소엽시인은 LA 문인군단(文人軍團)을 이끌고 뉴욕을 방문했다. 월간광야의 김명순편집장 최세용시인 세인트루이스의 최충희시인 외에 몇분이 함께했다. 미주기독문학동우회에서 “열린문학회” 강사로 초청한 것이다.

 

 

소엽시인은 “나의 신앙 나의 문학”을 강연했다. 그녀는 별을 노래하지만 물의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체험이요 신앙이다. 그날 밤 그녀는 “물처럼 그렇게 살수는 없을까?”를 조용히 낭송했다. 한 방울 한 방울 피와 눈물로 써낸 그녀의 시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청중의 가슴을 하얗게 부서지게 만들었다.

 

“가장 부드러운 물이/ 제 몸을 부수어/ 바위를 뚫고 물길을 내듯이/ 당신의 사랑으로/ 나의 단단한 고집과 편견을 깨트려/ 물처럼 그렇게 흐를 수는 없을까...하략...” 물방울로 시작되는 그녀의 “물처럼...”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세상을 뒤엎는 사랑의 함성으로 끝났다. 김대중대통령은 감옥시절 가장 애독한 책이 김소엽시집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뉴욕관광을 위하여 하루를 더 머물고 떠나려던 11일 아침 소엽시인은 그 유명한 “뉴욕 9.11”를 체험하게 된다. 빈라덴의 쌍둥이 빌딩폭파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일주일간 비행기가 뜰 수 없어 소엽시인은 계속 묵어야 했다. 그녀는 억지춘향으로 뉴욕을 더 구경해야 했지만 난 속으로 반가웠다. 아씨덕분에 남원구경을 즐기게 된 방자처럼 좋기만 했던 것이다. 9.11때문에 나는 소엽시인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평강공주와 바보온달까지는 못됐지만.

 

몇년 후 성탄절에 다시 뉴욕을 찾은 김소엽시인은 기독문학동우회의“카페문학회”에서 강연을 했다. 인상적일 정도로 톤과 내용 표현이 모두 강렬했다. 내가 물어봤다.

 

“아니 소엽권사님처럼 착하고 가녀린 미녀의 몸에서 어떻게 야당당수 박순천여사 같은 강렬한 기(氣)가 나옵니까?”

 

“생각해봐요. 저는 40도 되기 전에 갑작스레 남편을 잃었어요. 어린 외동딸과 함께 험한 세상을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여인이 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케네디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그녀는 갑자기 약한 말을 꺼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대수술을 하고 조리중인데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했다. 차를 길가에 세웠다. 부흥회를 다니면서 수많은 안수기도를 해봤지만 자동차 안에서의 안수기도는 생전 처음이었다.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 그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안수기도 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매일 그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매일마다 그녀가 쾌차하기를 빌고 또 빌었으니까.

 

2011년 5월 한국 가는 길에 김명순국장과 함께 천안을 찾았다. 철저한 건강관리로 소엽시인은 암수술 후유증을 잘 견뎌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력이 약해있었다. 그래도 얼굴은 평강공주였다. 공주님은 우리를 태우고 산길을 돌고 돌아 산속비빔밥집으로 안내했다. 임금님이 몰래 드나들었을 법한 진미식당(珍味食堂)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공주님은 서북쪽으로 차를 몰더니 태조산으로 올라갔다. 공주님이 교수했던 호서대학 옆길위로 각원사가 나타났다. 거대한 불상이 괴물처럼 앉아 있었다. 공주님이 설명했다.

 

“저기 보이는 저 청동불상이 그 유명한 세계최대의 천안 각원사 좌불상 이랍니다. 빌기만 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뤄진다고 소문나 사람들이 몰려들지요.”

 

“브라질이 세계최대의 예수상을 세우고 국운이 쇠퇴하더니 한국에서는 세계최대 좌불상이 생겨났군요. 그나마 일어나지 않고 않아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하긴 저렇게 무지하게 크고 뚱뚱하니 일어날 수 있겠어요? 꼭 바보온달처럼 미련하게 보이는 데 무슨 영험이 있을라구요?”

 

“이목사님은 바보온달이 그렇게 좋은가 보죠? 돌부처를 보고도 온달 생각을 하시니...”

 

“하하하하”

 

“호호호호”

 

소엽권사는 평강공주처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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