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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소년의 섞어찌게 세상
삶의 무게에 머리카락은 반백이 되어 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 중년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요지경 같은 세상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삶의 지혜를 찾아보는 코너입니다. 대학원에서 언론을 전공한 익명의 필자는 한국에 거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며,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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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총각팬티

글쓴이 : 흰머리소년 날짜 : 2011-07-21 (목) 05:39:44

 

덥다 참으로 덥다

이런 때는 너무 추워 살갗이 갈라질 것 같은 한겨울을 떠올리며

맘속의 피서(避暑)를 할 일이다.


 

바야흐로 북풍한설 몰아치는 오래전 1월.

소한(小寒)네 가서 얼어 죽는다던 대한(大寒)이 어떻게 살아와서 돌아왔는지

그 추위가 맹위를 떨치다 못해서 이단 옆차기를 시도하는 정말 엽기적인 겨울이었다.

그렇다. 온동네 수도관이 땡땡 얼어붙어 아침 출근길

앞집 아저씨 옆집 아줌마, 아래층에 쥔집 꼬마가 쪽팔림에 얼굴 가리고 뛰다가 넘어지고

자빠지며 골목을 시끌벅적하게 만들던 그시절.....


 

"아줌마네 물 안나오죠?"

"총각도 세수 못했남?"

"....."


 

보라~~! 세수는 고사하고 세탁기쪽 수도가 영락없이 얼어서 몇 일째 빨래를 돌리지 못했던 것이었던 것이었으니.

월요일 아침에 속옷을 갈아 입으려 옷장을 보니 팬티가 떨렁 삼각 한장과

트렁크 한장 밖에는 없지 않는가.


 

일단 옷을 입고 밖으로는 나가야 목욕탕엘 가던지 사우나엘 가던지 하는데 이것은 스텝도

옮기기 전에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문제가 예견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이 녹지 않는다면 눈을 녹여서라도 손빨래를 해야만 한다....!!'

동방위 출신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각오를 다지는 그날의 선택은 삼각 팬티!

트렁크 팬티는 내일의 희망이었다.


 

여기서 잠깐!

혼자 사는 남자는 속옷이 많아야 유사시?에 당황하지 않는 것이니....

빨아만 놓았다면 전자렌지에라도 돌려서 입고 나가는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던 것이었다.

약 5분간 해동으로 해놓고 1분에 한 번씩 뒤집어 준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수 있다.

그 축축함?

그런 기분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필수사항 아닌가! 그정도 못하면 차라리 결혼하고 살어라!

이어서....

그나마 얼마전 속옷 가게에 들러 몇장 더 사왔기에 망정이지 아니 그랬다면

짜릿하게 반응?하는 속살을 양복 바지저고리에 문지르며 갈지자로 출근을

했어야 하는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런 모양을 호사가들은 노-팬티 라고 했다.


 

그런데....

유유히 출근해서 의자에 앉았으나 왠지 투박한 느낌이 나면서 아랫도리 보온이 참 잘된다 싶은 생각이 대퇴부를 스쳤다.

최근들어 살이 많이 찌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오늘과 어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싶은 마음에 탐스런 내 엉덩이를 만져 보았겠다.

'이것은 삼각팬티, 이것은 바지, 그런데 이것은 무엇이냐?'

손을 넣어서 아랫도리 복장 상태를 확인하던 나는 갑자기 엄습(掩襲)하는 불안, 초조, 공포와 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느껴야 했다.


 

아뿔싸....

삼각팬티 위에다가 트렁크팬티를 하나 더 입고 왔구나.

안그래도 팬티가 없어서 난린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토요일로 착각해서 금요일날 사복입고 당당하게 출근하다 결국엔 숨어서

계단으로 올라왔던 기억은 있지만.....(주5일 근무제가 아니던 시절 토요일 자율복 규정을 회사에서 실시 했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에 할 말이 없었다.


 

지금 화장실에 가서 한 꺼풀 벗어서 고이접어 가져갔다 재생을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입고있다 둘 다 손빨래를 해야 하는가.....

고민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의 언덕을 넘어 저 멀리 민생고의 벌판을 달리고 있었으니.....

겨울철 손빨래가 얼마나 하기 싫은지 잘 아시는 독신자 클럽 직원 여러분들의 당연한 선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한 꺼풀 트렁크 팬티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그날따라 회사 화장실은 왜 그리도 싸늘한지.....

물아~~~! 빨리 녹아라.....

퇴근하며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고

집에 갔을때 수도만 녹아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은 염원이 용솟음 쳤다.

물론 나의 마지막 보루인 트렁크 팬티는 가방 안에서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지만.....


 

그런데 쫘잔~~~~~!!! 집에가니 세탁기 수도꼭지가 녹아서 뜨거운 물이 콸콸 거리고 있지 않은가.

아싸 가오리~~!!!

감격의 눈물....찔끔.

이제야 그동안 밀린 빨래는 할 수 있겠다는 감격.....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그 환희~~~~


 

 

www.ko.wikipedia.org

나는 얼른 그동안 방구석에 쌓아 두었던 팬티언덕?을 정리하여 세탁기 뚜껑을 열어 젖히고

마이클 조던 자유투 쏘듯이 한 장, 한 장 정조준 하여 투구를 하였다.

물론 가방안에 접어왔던 트렁크 팬티도 쓰리쿠션을 이용해 세탁기 속으로 넣어 버렸다.

그리고 문을 닫고 세탁기로 떨어지는 수도물 소리에 흐뭇한 미소와 허밍으로 보답하며

오랫동안? 밀지 못한 나의 표피 꺼풀을 유쾌, 통쾌, 상쾌하게 벗겨내기 위해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원타치 완전자동 금성 백조세탁기(거기에 그렇게 써 있다)의 완벽한 탈수력을 믿고 뚜껑을 열어 젖혔는데.....

허거걱~~~!!!

....

....


 

이럴수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째 이런 일이....

세탁기가 고장난 것이 아닌가.

10년을 한결같이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왜 하필이면 그날 밤에 숨을 거두었는가.

꺼이꺼이~~~~

가득찬 세탁조 안의 희멀건 물속에 침몰한 나의 팬티들.....

......


 

나는 그나마 나의 살에 닿지 않았던 트렁크팬티를 조심스레 꺼내어 꾹 짜서는

전자렌지에 5분 해동 장치를 작동 시켰다.

물론 주변의 어떤 직원도 그런 내막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완벽한 위장을 위해 향수도 한 방울 뿌려서 입는 나의 치밀함 덕분이다. 낄낄낄....


 

그날의 땀나는 경험은

해를 거듭하며 만나게될 겨울에 대한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 ~~~! 올 겨울은 춥지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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