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3월17일, PM 10:45:32 파리 : 3월18일, AM 05:45:32 서울 : 3월18일, PM 12:45:32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뉴욕필진
·Obi Lee's NYHOTPOINT (103)
·강우성의 오!필승코리아 (40)
·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14)
·김기화의 Shall we dance (16)
·김성아의 NY 다이어리 (16)
·김은주의 마음의 편지 (45)
·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107)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173)
·로창현의 뉴욕 편지 (495)
·마라토너 에반엄마 (5)
·백영현의 아리랑별곡 (26)
·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9)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42)
·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17)
·신재영의 쓴소리 단소리 (13)
·안치용의 시크릿오브코리아 (38)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37)
·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22)
·조성모의 Along the Road (50)
·차주범의 ‘We are America (36)
·최윤희의 미국속의 한국인 (15)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404)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37)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244)
·훈이네의 미국살이 (115)
·韓泰格의 架橋세상 (96)
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총 게시물 495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울고싶은 일본에 뺨때려준 한국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12-24 (화) 15:07:30





UN평화유지군(PKO)은 일명 ‘블루 베레(Blue Berets)’입니다. UN 글자가 쓰인 푸른색 베레모나 헬멧을 착용한데 따른 것이지요. PKO의 효시(嚆矢)는 1948년 신생독립국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분쟁 직후 평화 유지를 위한 것이었고 한국전쟁 휴전이 선포된 1953년부터 한미연합군으로 대체된 1967년까지 한반도에서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photo by 뉴시스 최동준기자 





지금의 이름이 된 것은 1991년 UN 안보리가 더욱 체계적인 지원 활동을 위해 평화유지작전부(Peacekeeping Operations)를 발족하면서부터입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UN의 PKO는 군국주의 부활(復活)을 꿈꾸는 일본의 극우세력에게 마른 하늘에 단비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은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일본의 ‘군사적 기여’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등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부추긴 최대 원군(援軍)이었지요. 당시엔 일본 헌법 제9조와 전수방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일본 내 여론과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한 주변국들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종전 직후인 이듬해 4월 페르시아만의 잔류 기뢰 제거를 돕는다는 핑계로 소해정이 파견됨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일본 군대가 영해를 넘어가는 ‘신기원(新紀元)’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위대의 공식적인 해외 활동을 시작한 일본은 그해 11월 자민당이 ‘PKO 협력법안’을 국회 소위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후 제2 야당 공명당의 지지 속에 통과의 개가(凱歌)를 올렸습니다. 일본 헌법학자 80% 이상이 ‘군사적 색채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반대했지만 유엔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합법화한 일본 정부의 전략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1992년 캄보디아에 첫 파병을 시작으로 동티모르, 아이티, 그리고 지난해 남수단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군대는 8번의 파병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남수단은 2012년 1월 선발대를 보내는 등 이 지역과 긴밀한 중국에 앞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런 일본이 23일 또 하나의 의미있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남수단에서 PKO에 참여 중인 한국군에 육상자위대의 탄약을 제공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반기문 사무총장의 요청에 따라 파병을 위해 2013년 2월에 한빛부대를 파병했고 현재 280명의 2진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공병 및 의무대를 중심으로 편성된 한빛부대는 경계 병력의 무기 대부분이 구경 10㎜ 이하의 소형 개인 화기여서 주둔지 방호를 인도와 네팔군 부대에 맡기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현지에서 교전 가능성이 고조되자 UNMISS(남수단재건지원단)를 통해 탄약 지원을 요청, 미 아프리카사령부로부터 5000여발, 일본 자위대로부터 1만여발을 빌려온 것이지요.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의 화기와 호환(互換) 가능한 탄약을 보유한 현지 외국군은 미군과 일본 자위대밖에 없다”면서 “조만간 우리 수송기를 이용해 한빛부대에 탄약과 화기 등 개인 방호(防護) 장비와 부식을 지원할 예정이며 화기와 탄약이 보충되면 빌린 탄약을 돌려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우리 군인들의 안전이다. 강도가 칼을 들고 다가오는 상황에서 옆집에 총을 집어달라고 한 것과 같다”는 당국자의 말처럼 먼 이국의 평화를 위해 땀흘리는 우리 장병들이 터럭 하나라도 다치는 일이 발생해선 안됩니다.





그런 점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애당초 공병과 의료 지원 임무의 한빛부대이지만 방호 병력이 허겁지겁 탄약을 빌려야 할만큼 물자가 충분치 않다는 것은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현지 파병된 일본의 자위대 역시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비전투부대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1만발의 탄약을 빌려줄 정도라면 그들의 보급 물자는 유사시를 대비한 충분량이 확보돼 있음을 의미합니다. 만에 하나 교전(交戰)의 돌발 상황이 벌어졌는데 탄약이 모자라 소중한 우리 장병들의 인명이 희생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요.

 

 

 

<사진=합참 제공>



또 한가지 문제는, 이번 사안의 시사점과 향후 파급력을 고려할 때 과연 일본군의 탄약을 빌리는 게 적절하냐는 것입니다.





국방부의 말마따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면 ‘급한 불’은 미군의 지원으로 끄고 즉각 국군 수송기를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우리 군인들의 생명이 위태롭다는데 탄약쯤이야 하루, 이틀 사이에 보내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요.





‘강도가 칼을 들고 올지도 모르니 총이 있는 이웃집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왼쪽 집은 예전부터 우리를 도왔고 오른쪽 집은 우리 가족을 살해한 전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강도가 목에 칼을 들이댄 것도 아니고 한나절이면 큰집에서 ‘대포’라도 가져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지난 역사 속의 일본을 사람에 비유하면 그는 수십년 간 한 동네에서 강간과 살해를 자행(恣行)하고 남의 재산을 탈취하고 노예로 부린 극악무도한 자입니다. 다른 동네를 습격하고, 급기야 나라 전체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자가 다시 이웃사촌이 되려면 최소한 개과천선(改過遷善)의 자세가 선행되야 합니다.





그러나 ‘위안부’부터 ‘독도’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일본은 진정한 참회는 커녕, 과거의 악행을 합리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평생 ‘보호관찰(保護觀察)’해야 할 요주의 인물에게 무기를 들려준 것도 찜찜한데 우리 스스로 “총알좀 꿔 달라” 했으니 여론이 불붙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본의 PKO 협력법은 필요한 경우 내각회의 결정으로 물자를 제공할 수 있지만 무기나 탄약이 포함되지 않는 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었습니다. 교도통신이 지적하였듯 국회에서 논의되야 할 탄약 지원이 관방장관, 외무상, 방위상 등 국가안전보장회의(NSC) 4인각료회의에서 전격 처리된 것은 그들의 속내를 짐작케 합니다.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고 싶은 참에 한국이 총대를 매줬는데 왜 마다하겠습니까. 일본 우익으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입니다. 더구나 외국군에 군사물자를 공급한 최초의 사례 아닌가요.





그래서 이번 지원은 무기 수출 제약 문제와 한·일 간 군사협력 등 향후 일본이 기울여야 할 몇 단계의 노력을 한방에 해결하는 중대한 선례가 되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일본은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난 100년 간 식민(植民)의 압정(壓政)과 전쟁(戰爭)의 참화(慘禍), 분단(分斷)의 비극(悲劇)을 안기고도 머리를 꼿꼿이 쳐드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은 정말이지 일본은 아니고 싶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09:22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QR CODE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창간일 : 2010.06.05. l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