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감동(感動)이었지만 두 번째는 실망(失望)이었고 세 번째는 낙망(落望)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치’는 없어서는 안될 기능적 수단입니다. 삶을 영위하도록 돕고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일을 위해 우리는 ‘정치인’이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의 틀과 ‘도덕률’의 제어(制御)속에 일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국민이 부여한 소중한 권력을 대부분의 정치꾼들이 개인의 영달(榮達)과 소수의 이익(利益)으로 이용하면서 정치의 근간인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훼손(毁損)돼 왔습니다. 정말 참다운 정치인은 없을까, 맑은 정치, 원칙에 충실한 정치, 본연의 정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요.
정치는 그런게 아니라고,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구요?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정치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빙자한 정치꾼들의 문제입니다. 민주주의가 현대 정치의 이상적인 시스템임에도 잘못 기능하는 것은 그것을 다루는 자들때문입니다.
절대군주의 시대라면 의로운 영웅이 오늘의 생채기 난 민주주의보다 어떤 면으로 낫게 정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타임머신 타고 돌아갈 수는 없으니 다소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민주주의라는 최선의 대안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로 보자면 지난 100여년간의 풍상(風霜)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피부로 느끼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한반도의 반쪽으로 살아온 대한민국 건국이후 우리는 명색이 민주공화국임을 헌법에 내세웠음에도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의 오랜 오명(汚名)을 쓴 채 살아왔습니다.
4.19혁명도 있었고 5.16군사쿠데타도 있었습니다. 12.12정변에 이은 ‘서울의 봄’은 광주에서의 무자비한 군화발에 유린(蹂躪)됐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6.29항복선언을 통해 20년만의 대통령직선제 쟁취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그후 다섯 번 대통령을 뽑기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정권이 탄생할때마다 자칭타칭의 수식어가 붙었지요.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4대강 삽질정부’ ‘나도몰라 창조정부’..앞으로 3년후엔 또 어떤 뜬금없는 정부가 국민의 울화를 자극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무력이 아닌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를 경험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조금씩 발전하는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분탕질하는 최악의 범죄가 일어났습니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총체적인 대선 불법개입입니다.
투표조작 논란은 그만두고라도 대선불법개입만으로도 대통령은 하야(下野)해야 하며 국민투표를 재실시하는 것이 정상적인 나라가 할 일입니다. 그러나 “대선개입으로 득본게 없다”는 한마디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당후보가 총체적인 국가기관의 여론조작이라는 엄청난 범죄에 편승해 1.4%의 근소한 표차로 당선됐는데 득본게 없다구요?
좋습니다. 득본게 없다치고 대선이라는 게임이 어느 일방(그것도 주최측)의 룰 위반이 발각됐으면 최소한 재경기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박근혜정부는 ‘무너진 상식의 정부’라는 비아냥을 하나 더 들을 모양입니다.
정권의 뻔뻔함은 믿는 구석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양 극단에 있는 수구꼴통과 극좌맹종의 패거리들이 벌이는 갈등구조덕분입니다. 이들의 비율은 많지 않으나 박정희정권이 낳은 폐해(弊害)중 하나인 지역감정과 편가르기를 통해 건전한 보수와 진보를 각각의 세력 안에 흡수하며 물들여 왔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면 좌파가 되고 종북으로 몰리고, 북한을 비판하면 우파가 되고 수구로 몰리는 단세포적인 이분법으로 대다수 건전한 양심세력이 왜곡된 정치에 염증(厭症)을 느끼고 침묵(沈黙)을 지킬수밖에 없었습니다.
3년전 불어닥친 ‘안철수현상’은 극단의 세력을 일거에 청소하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국가를 일궈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꽃피운 것입니다. 안철수가 잘나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안철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화합할 수 없는 양 극단과 그에 편승해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기득권정치세력에 신물이 난 대다수 국민들은 안철수를 통해 희망의 정치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고의든 우연이든 안철수는 세 차례 실수를 통해 그런 국민들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50%의 지지를 받는 그가 5%도 안되는 후보에게 양보(讓步)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을 때 국민들은 한국정치사에 일찍이 볼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철수에 대한 감동이 박원순의 당선이라는 기적을 낳은 것입니다. 안철수의 양보는 그 자신 아직 정치를 하기엔 준비가 덜 됐으리라는 이해가 가능했습니다. 또한 양보를 통해 서울시장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큰 그릇이라는 이미지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시장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소통령'이라는 서울시장을 통해 정치경험과 경륜을 쌓고 '대통령'에 도전해했어야 했습니다.
잠행하며 수많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했던 그가 마침내 대선후보로 나섰습니다. 정치인의 새 삶을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돌아갈 다리도 태워버렸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는 대권도전을 하기전부터 박근혜를 위협하는 후보였습니다. 그가 양보해야 할 상대는 없었을뿐더러, 양보를 해서도 안됐습니다. 여건 야건 수십년간의 구태를 일소해야 할 유일한 후보가 누구에게 양보를 한다는 말입니까.
다시 회상하기도 안타깝지만 대선레이스에서 ‘단일화’의 덫에 치여 허우적대다가 억지춘향격의 도중하차를 한 것은 크나큰 실책이었습니다. 그를 지지한 국민들은 다양한 정치프리즘을 갖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세력을 제외한 전통적인 야권과 여권 성향이 뒤섞였고 무엇보다 중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 안철수가 왜 지지율이 훨씬 떨어지는 야당후보와 단일화협상을 하며 시간낭비를 합니까. 많은 지지자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인 부패한 여당과 야당의 어느 한쪽에 매몰(埋沒)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럴 시간에 안철수는 과감한 국민통합의 논리로 여야의 건전세력을 끌어오는데 집중했어야 합니다.
결국 그는 야당의 노회한 술수에 말려 중도사퇴의 결정을 했습니다. 야당은 환호작약(歡呼雀躍)했지만 착각은 자유였지요. 안철수 지지자들은 실망했고 상당수가 이탈했습니다. 안철수가 문재인을 밀어달라고 했지만 국민들은 국회의사당의 거수기가 아니었습니다. 서울시장때의 감동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과론이지만 문재인이 사퇴하고 안철수가 나갔다면 여당이 제아무리 불법선거개입을 했어도 일방적인 승리를 했을 것입니다. 무슨 근거냐구요? 그에게선 이권(利權)의 밥그릇이 아니라 희망(希望)의 새정치가 보였기때문입니다. 밥그릇과 지역색, 종교색,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중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누구에게 신세도 안졌으니 빚도 없는 안철수는 국가최고통수권자로 소신껏 정치를 할 수 있었겠지요. 신기루같은 ‘창조정치’가 아니라 대한민국은 매일이 새로운 진정한 창조의 나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여, 뼈아픈 실수를 딛고 일어서기엔 충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속에 새정치연합이라는 정당조직을 만든 그에게 국민들은 다시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를 폄하(貶下)하는 세력은 좀더 증가했지만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진정 국민을 위한 정당이 탄생되기를 바랬습니다.
photo by 뉴시스 박동욱기자
그런데, 달밤에 깜짝쇼도 아니고 민주당과 제3지대 정당을 창당하는 선언을 했습니다. 야권연대조차 부인하던 그가 며칠간의 극비회동 끝에 발표한 내용은 통합의 아이콘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충격을 넘어 배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도대체 기초공천 폐지가 무엇이 그리도 대단하길래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통합으로 갔는지 요령부득입니다. 지지자들이 닭쫒는 개가 되자는건 아닌데 말입니다.
안철수의 결정에 떨떠름한 행보를 보이는 윤여준 새정치연합의장은 “(안 의원이) 일부에선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표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정당에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는 게 맞다”며 “사슴이 호랑이굴에 들어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그곳은 호랑이 굴이 아니라 하이에나와 늑대, 여우, 너구리, 칠면조 등이 득실대는 삼류 동물원입니다. 안철수가 포수인지 사슴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호랑이가 없는데 무슨 호랑이를 잡겠습니까.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는 국민통합이라는 호랑이 꼬리를 잡고 있다가 슬며시 놓은 채 잡다한 동물이 모인 사파리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그나마 협상의 상대는 동물원의 '바지사장'에 가깝습니다. 기왕이면 동물원의 새 사장이 되어 관람객들에게 제대로 서비스하길 바라지만 사슴같은 그이가 노회(老獪)한 정치꾼들 틈바구니에서 상처만 잔뜩 안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됩니다.
걱정은 사라진 통합의 아이콘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深化)될 대한민국입니다. 주변 열강들의 힘겨루기에 민족통일도 아득한데 그나마 반쪽이 사분오열(四分五裂)되면 우리 후손들의 안위까지 근심되는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제2, 제3의 안철수는 나올테니까요. ‘안철수현상’의 주인공은 안철수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들입니다.
말띠해 시 한수로 희망을 노래합니다.
www.ko.wikipedia.org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1945)의 ‘광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09:22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