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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훈의 세상속으로
대경중학교에서 농구를 하다가 2학년 겨울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왔다. 뉴욕주 답스페리중고교에서 농구선수로 활약, 2008년 뉴욕주립대(SUNY) 플래츠버그 최초의 아시안선수로 스카우트 됐다. 농구볼만 잡으면 행복했던 ‘바스켓볼 키드’에서 세상속으로 뛰어든 ‘열혈남아’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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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은 농구를 좋아한다

글쓴이 : 크리스 날짜 : 2010-09-12 (일) 12:51:13

중학교 2학년말 두꺼운 후드티 하나론 더이상 추위를 견디기 어렵게 되었을즈음 나의 가족은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미국은 내가 엄마 뱃속에 자리잡았을 때 처음 방문했던 곳, 걸음마를 막 떼었을 무렵엔 처음으로 발 디뎌본 곳, 그리고 한달 정도를 초등학생 때 외삼촌 가족이 살고 있는 애리조나에서 동갑내기 사촌과 함께 녀석의 학교에 다녀본 곳이기도 했다.


미국은 그래서 모든게 낯선 나라인 한편 그리운 나라로 다가왔다. 눈 내린 어느 겨울날, 썰매타러 놀러가는 한 어린 아이의 들뜬 모습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게 곧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내 모습이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미국의 무엇이 그렇게도 좋아서 나의 집, 나의 학교, 그리고 나의 학우들을 뒤로 하고 싹 돌아섰는지, 마음 한 켠이 허전하고 씁쓸해진다.


현실은 곧 내 주위에 나타났다. 뉴욕은 서울과 다르게 세상 온통 새하얀 눈과 볼살이 얼얼거리는 거센 바람과 추위로 뒤덮여 있었다. 숨 쉬기 어려운 날씨였지만 내 숨을 멎게 한 것은 추위가 아니었다.


숨을 멎게 한 그것은 되레 벽난로로 덥힌 것처럼 따뜻하고 아담한 크기의 방에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과 맞은편에 서있던 큼직한 체구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었다. 
 
외계인(外界人)들이었다.


초등학교 때 전교 회장 출마를 나갔었어도 이렇게 압도적인 시선은 느낄 수 없었다. 나에게 고정된 시선들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선생님이 가리키는 맨 뒷자리에 가 앉았다.


내 눈 앞에서 그 외계인들이 외계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이 희귀한 장면은 그 다음 다음 수업까지 이어졌다. 이로부터 무려 6개월간 답답함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됐다.


그러나 첫 날만큼은 주위 환경에 짓눌려 아무 것도 알아 듣지 못해 답답할 겨를도 없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한 아이와 함께 점심까지 무사히 마친 후에 체육수업이 이어졌다.


나와 학생들은 체육관으로 이동했고 거기엔 대머리의 이쁘장하게 생긴(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분명 그 분은 꽤 귀엽게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추리닝복을 두툼히 껴입은 체육선생님의 지시 하에 농구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중학교 때부터 학교 팀에 들어가 농구를 시작한 나는 당시 내가 다닌 미국 중학교를 포함해 인근에선 다른 또래들보다 월등히 농구를 잘했다. 지금도 미국 대학에서 학교 농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면 뭐 충분히 과시할 수 있는 소리다.


어쨌든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들이 발굴되는 미국 땅에서 농구는 드럽게도(?) 못하는 아이들과 대면하게 된 것이 NBA 농구에 익숙한 나로서는 의외였다.


나중에 깨닫게 된거지만 대부분의 미국 중학교 아이들은 그리 운동에 뛰어나지 않다.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선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은 방과 후 취미활동에 속하기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선 르브론 제임스나 코비 브라이언트(현 NBA 농구선수들) 같이 몇몇 고등학생 운동선수들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한가지만 죽어라 해야 되는 한국과 너무도 다른 교육 현실에 있다.


한국에서 학생들은 결코 선택권이 없는 것일까? 그래서 10대들의 방황이 유난히도 명확히 보여지는 것은 아닐까? 초등학생들도 방과 후 학원에 밤 늦도록 찌들어 있는게 한국교육의 현실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가? 왜 한국 사람들이 체계적인 미국의 교육방식을 부러워하는지 나는 직접 몸으로 이해했다.


 


이 모든 고민들을 뒤로 하고 이날 처음으로 외계인들을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들과 난 말로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없었다. 농구가 몸으로 하는 운동인만큼 농구 코트 위에서 그들과 난 몸으로 대화를 나눴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물음에 ‘yes’ 아니면 ‘no’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외계인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과 달리 꽤나 적극적이구나?’하며.
 
그들과 우리의 기본적인 퍼스낼러리티(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 극과 극인 두개의 근본적인 퍼스낼러티를 알게 된 것은 내게 여러 종류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가르쳐 줬다.


 


그 후 학교 농구 팀에도 들어갔고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나를 그저 신기한 이방인에서 교내에서 나름 권위 있는 학생으로 만들어준 농구. 농구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그 짧은 하루의 일이 숫기 없는 내게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고 처음으로 또래 여자아이를 안아보는 경험도 했다. 한국에서 남자중학교를 다녔던 나는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쑥맥이었다.


남자 여자 구별이 이제 막 될 때쯤 여자를 껴안아 보다니. 그것도 같은 한국여자도 아닌 흑인여자를. 한국 어디에서 흑인여자를 볼 수 있었는가?


그때의 기분을 설명하자니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당시엔 너무나 놀랐지만 그 아이를 뿌리치진 않았던게 다행이다.


아직 대화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황에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외계인처럼 여긴 아이한테 안기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날 밤 그 아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도 생각난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본 그 아이, 저기서 걸어오는 한 남자아이와 눈 마주치더니 가서 안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가오는 다른 남자아이한테도. 알고보니 서로 안는게 미국에서의 한가지 인사법이었다.


그날 밤 혼자 고민하다 잠든 장면을 상상하면 바보같던 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그 여자아이…남자아이들과 같이 농구 하고 있으면 자주 와서 구경하던걸로 보아 농구를 꽤 좋아했었나 보다.


어쨌든, 이후로도 그 여자아이를 여러 번 안아봐야 했다. 인사라는데 어쩌겠는가? 다만 왜 이 좋은 인사법을 한국에선 공유(?)하지 않는 것인지가 의문이다.


 


그날, 체육수업에 했던 운동이 축구나 야구였어도 내가 그토록 빨리 적응 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유난히 미식축구와 농구가 인기가 있었고 그래서 난 학교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운 좋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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