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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훈의 세상속으로
대경중학교에서 농구를 하다가 2학년 겨울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왔다. 뉴욕주 답스페리중고교에서 농구선수로 활약, 2008년 뉴욕주립대(SUNY) 플래츠버그 최초의 아시안선수로 스카우트 됐다. 농구볼만 잡으면 행복했던 ‘바스켓볼 키드’에서 세상속으로 뛰어든 ‘열혈남아’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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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총장이 축구레프리로 변신한 까닭

1차대전성탄휴전 100주년행사…반총장 승부차기도
글쓴이 : 노정훈 날짜 : 2014-12-09 (화) 11:18:33

By Jung Hoon Roh 盧正訓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또한번 축구실력을 뽐냈다.


 

이번엔 선수가 아니라 심판이었다. 지난 5일 유엔본부 그라운드에서 열린 제1차대전 100주년을 기념한 축구대결에서 반기문 총장이 레프리로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이날 행사는 영국과 독일 주재 유엔대사가 공동 주최한 것으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던 100년전 양국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극적으로 하루 휴전(休戰)한 날을 기념한 것이다.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영국군과 독일군은 크리스마스 전날 프랑스 북부지역에서 교전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일군의 한 전령사가 영국군 참호로 찾아와 크리스마스 하루 휴전을 제안했다.


 

공식 휴전이 아니었음에도 놀랍게도 양국 군인들은 하나씩 총을 놓고 참호속에서 나왔다. 주변의 전사자들을 수습(收拾)한 후 이들은 담배를 나눠 피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캐롤송을 부르며 한데 어울려 축구경기까지 즐겼다. 저 유명한 ‘크리스마스 휴전(Christmas Truce)‘이다.


 

이렇게 휴전에 참여한 군인들은 양국에서 10만여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동(搖動)치는 유럽의 국제정세로 인해 전쟁의 참극이 발생했지만 양국 군인들은 비정한 전장에서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기며 인류애(人類愛)를 나눈 것이다.


 

‘크리스마스 휴전’ 100주년 기념식엔 반기문 사무총장과 마크 라이얼 그랜트 유엔영국대사, 하랄트 브라운 유엔독일대사, 얀 엘리아슨 유엔사무차장 등이 참석했다.


 


 


 

 


 

반기문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은 우리에게 원한(怨恨)이나 증오(憎惡)도 눈녹듯 녹아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면서 "과거 적이었던 영국과 독일은 이제 위대한 동맹국이 됐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역사속의 치명적인 분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람과 사람이 갖는 인간애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1914년 당시 영국군을 지휘한 월터 컨그리브 장군의 편지 등을 읽는 순서도 이어졌다. 그는 편지에서 "놀랍게도 오늘 아침 한 독일군인이 하루 휴전을 원한다고 외쳤다. 우리 사병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난간 위로 올라서자 다른 독일군인이 같은 행동을 했다. 곧이어 양측에서 더 많이 밖으로 나왔고 결국 온종일 그들은 함께 걸으며 서로에게 담배를 주었고 캐롤송을 불렀다"고 밝혔다.


 

독일군과 영국군이 우의의 상징으로 축구 경기를 한 것처럼 영국과 독일 유엔대표부 대사와 유엔 임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축구 승부차기를 가졌다. 경기구는 100년전과 같은 가죽공이 사용됐고 심판으로 나선 반기문 총장은 익살스럽게 옐로카드를 들어보이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7월 아이티 방문길에 축구장에서 드리블 실력을 선보인 바 있다. 반 총장도 참여한 승부차기는 양 팀이 사이좋게 2대2 무승부로 끝났다. 이날 골키퍼의 유니폼엔 '휴전(Truce)'이라는 이름과 1914년을 상징(象徵)하는 숫자 14가 새겨져 있었다.


 
 
 
 



<꼬리뉴스>


 

1914년 크리스마스의 기적


 

“한 번 생각해보세요. 바로 몇 시간 전에, 제가 그렇게 죽이려고 애썼던 그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을...정말 굉장하죠?”

- 크리스마스 휴전을 직접 겪은 한 병사의 편지에서.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수백 명이 넘는 그러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웃고,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어!”

- 크리스마스 휴전을 직접 겪은 영국군 병사 톰의 편지에서.


 

제1차 세계대전 도중에 튀어나온 작지만 커다란 기적. 아무리 봐도 전장 전설같지만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 3국에 분명히 기록이 남아있고, 군 수뇌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실화'였다.

크리스마스 휴전, 또는 크리스마스 정전이라고 부른다. 영문은 Christmas Truce(혹은 Ceasefire). 혹은 유럽판 웰컴 투 동막골(...)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만 하더라도 주요 참전국가들은 전쟁이 길어봐야 2~3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고, 군부와 사회, 그리고 말단 병사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전쟁과 참호전의 일상에 병사들과 짬이 낮은 장교들은 자연스레 지쳐만 갔고, 어느덧 1914년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가톨릭와 개신교로 갈리긴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륙 전체가 철저한 기독교 문화인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전쟁 중이더라도 부대 내에서 자그마한 행사 정도는 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참호에서 대치 중이던 양군 병사들은 서로 캐롤송을 부르며 조촐하게 행사를 치루다가 상대방 참호에서도 캐롤송이 들리는걸 듣게 되었다. 갑자기 독일군들이 참호 위에 촛불과 전등으로 장식된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올려놓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참호 위로 올라갔다.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전선에서 맨몸으로 나타나는건 나 죽여줍쇼~ 하는 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발포하지 않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양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너도나도 참호 위로 올라왔다. 이윽고 그들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담소를 나누었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서로간의 부대 단추나 계급장, 군모 등 소소한 기념품(?)이나 식량 및 기호품 정도였다. 최일선의 소부대 지휘관들도 이런 분위기에 동참하여 상대방 지휘관과 만나 신사조약을 맺고 당일 교전을 하지 않고, 참호 사이의 죽음의 땅에 버려져 있던 양군 시신들을 수습해주었다.


 

뒤이어 양군 병사들은 시신들이 정리된 땅에서 축구장을 급조하여 팀을 나누어 같이 축구를 하고 같이 나뒹굴었다. 경기 결과는 3-2로 영국이 독일에게 역전패했는데, 영국측은 이를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고 하나 독일측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는 양자의 기록이 있다. 밤이 되자 이들은 같이 캐롤송을 부르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한 다음에 각자의 참호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휴전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벨기에의 이푸르 전역이지만, 서부전선 대다수의 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크리스마스 휴전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 지역에 따라서 휴전은 당일로 그치지 않고 2, 3일에서 길게는 1주일, 가장 긴 곳은 1915년 신년까지 이어져서 크리스마스-신년 휴전이 된 곳도 있었다.


 

이 휴전은 어느 누구의 제안도 강요도 없이 오직 일선 병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양측 군 수뇌부는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져서, 이를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주동자를 색출한답시고 헌병대로 부대를 뒤집어놓고 몇 명을 본보기로 처벌하는 등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그리고 적과 친해지는 상황을 막는다고 참호에 배치되는 병사들의 전환배치를 주기적으로 실시했는데...원래 참호 근무는 참호에서 일정기간 근무 후 후방으로 배치시켜 휴식기간을 주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병력부족과 함께 이런 전환배치가 점점 늦어져서 병사들의 불만이 누적됐는데, 이 사건 이후 실시된 전환배치는 참호에서 후방으로 바꿔주는 게 아니라 참호에서 참호로 바꾸는 배치였다. 즉, 병사들만 피곤해진 것. 하지만 그렇다고 장기전으로 지친 양측 장병들의 사기가 되살아날리도 없고… 크리스마스 휴전이 성립된 것은 한번 뿐이었지만 나중에는 당일치기 친선 축구 경기까지 전선 곳곳에서 벌어졌다.


 

어쨌거나 크리스마스 휴전은 1914년 단 한 해에 그치고 말았다. 1915년에도 지역별로 병사들에 의해 크리스마스 휴전이 재차 시도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양군 수뇌부는 상대방 진영에서 캐롤송이 들린다는 보고를 받자 즉시 집중포격(…)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1918년까지도, 기나긴 참호전 가운데서 전쟁의 포화가 격하지 않았던 곳에서는 저렇게까지는 아니어도 기념일 같은 때에 암묵적으로 무기를 내린 곳이 있었다고 한다.


 

(간혹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높으신 분들이 전선시찰을 나오기도 했는데, 양측 병사 및 초급 장교들이 이를 눈치채고 서로간의 합의를 통해 일종의 연기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영국군 진지에 시찰이 뜬다는 정보가 돌면, 열심히 싸우는 척을 하기 위해 독일군 참호와 협의하여 한 두 명 정도의 독일 병사들이 초병 임무를 수행 중인 것처럼 서 있다가, 영국군 시찰단이 나타나면 영국 병사들이 그 독일 병사를 향해 공포탄 혹은 빗나가게 하여 소총을 사격하고, 독일 병사는 총에 맞은 척하며 사라지는 식이었다. 의외로 잘 먹혔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크리스마스에도 비슷한 실화가 하나 있었다. 다만 극소수 병사들만의 거의 개인적인 휴전이라 조금 경우가 다르다. 웰컴 투 동막골과 비슷한 사례.


 

여담으로 뜬금없지만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이유로 휴전한 사례가 있다. 주인공은 마츠나가 히사히데로 1566년 미요시 3인중과 싸우던 중 크리스마스를 이유로 휴전했다. 코에이의 노부나가의 야망 천도에서도 이벤트로 재현되어 있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 Joyeux Noel, 2007)는 바로 이 크리스마스의 휴전을 다룬 영국/프랑스/독일 3국 합작 영화다.


 

<자료출처 앤하위키미러>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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