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전문필진 l 사진필진 l 열린기자 l Kor-Eng    
 
미국필진
·권이주의 美대륙을 달린다 (123)
·김동석의 워싱턴워치 (79)
·김수복의 자력갱생 북녘경제 (11)
·김중산의 LA별곡 (56)
·김창옥의 빌라레비 훨훨 (11)
·김태환의 한국현대사비화 (73)
·김현철의 세상보기 (121)
·노정훈의 세상속으로 (31)
·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2)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104)
·세등스님의 세상과 등불 (5)
·신필영의 삶의 뜨락에서 (34)
·오인동의 통일 고리-Gori (41)
·장호준의 Awesome Club (122)
·피터 김의 동해탈환 이야기 (52)
·한동춘의 퍽 환한 세상 (15)
·한종우의 시사아메리카 (13)
세등스님의 세상과 등불
스님이지만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들로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등불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주 약천사 혜인 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해인사에서 사미계수지. 직지사에서 구족계수지. 통도사 강원 졸업. 통도사 율원, 동국대학교 수학. 중국윈난대학교 졸업. 현 뉴욕 원각사 총무. 타이완 NGO단체 국제불광회 한국 제주협회 전문위원.
총 게시물 5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쌀한톨이 시주 세근” 일미삼근(一米三斤)

글쓴이 : 세등스님 날짜 : 2010-08-13 (금) 00:56:24

지구 온난화에 대한 햇님의 경고였을까? 올해 뉴욕의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매체에서는 지난 100년간 뉴욕 여름날씨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라고 난리다. 폭염(暴炎)으로 수은주가 섭씨 37도를 넘기던 지난 7월, 원각사 신도님들과 함께 절 근처에 있는 먼로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를 식혔던 적이 있다.

더위에 갈증에 지쳐서인지 그 날 따라 무척이나 아이스크림이 땡겼던 터라 미디엄 싸이즈로 주문을 하였는데, 한국식 크기에 익숙해 져 있던 나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선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크기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 크기면 시어머니 며느리 손자까지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큰 울트라 라지 싸이즈였다.

절반 정도를 먹고 나니 배가 불러 더 이상 먹기 힘들어 쩔쩔 매고 있는데 날씨마저 더워 아이스크림이 녹아 줄줄 흘러 내리는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데, 눈치를 살펴 주위를 둘러보니 미국사람들은 절반 정도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시원하게 휙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도 어쩔 수 없이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절로 돌아오는 길에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푸르른 산과 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참 아름답구나…’

미국은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 주변국가중 크게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나라도 없어 전쟁위험도 그다지 높지 않고, 세금이 매우 높아 가끔 한숨이 나오지만 복리후생이 안정적이어서 그래도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슨 복을 지었길래 이렇게 풍요로운 것일까…?’

그 순간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린 미국아이의 얼굴과 15년 전 통도사 공양간(밥짓는 곳) 소임 보던 날들이 희미하게 겹쳐지는 것이었다.

절집에는 “施恩(시은)이 一米三斤(일미삼근)”이라는 말이 있다. 시주자의 쌀 한 톨에 피땀이 세근이나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시주의 은혜가 무겁고 쌀 한 톨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는 옛 어른스님들의 당부가 담긴 지혜의 말씀이다.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스님들은 주로 절에서 후원소임을 보게 된다. 세속 식으로 이야기하면 밥짓고 국 끓이고 청소하는 일들이다.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찰이다.

나에게 있어서 통도사는 순수한 강원 학인 시절을 보낸 영혼의 고향 같은 곳이다. 출가한지 얼마 안되 강원에서 수학하고 있던 학인 시절, 치문반(1년차) 동안거 해제철(봄) 내가 맡은 소임은 반두(飯頭)였다. 한국 전통사찰 후원소임에는 밥을 짓는 반두, 국을 끓이는 갱두(羹頭), 그리고 반찬을 담당하는 채공(菜供) 이렇게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그 중 밥을 짓는 반두에는 상반두와 하반두로 나뉘어 진다. 상반두는 하반두를 이미 거친 일년 선배스님이 맡게 된다.

반두 소임을 보는 첫날 이었다. 밥짓는 공양간을 들어서니 소림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마솥이 3개 걸려있고 벽 옆쪽에는 잘 닦아 반질반질 광이 나있는 삽들이 주욱 걸려 있었다. 한 솥에는 최대 한번에 350명분 밥을 지을 수 있는데 솥이 3개 걸려 있으니 솥 3개를 풀 가동하면 한번에 약 1,000명분의 밥을 지울 수 있다.

첫 밥을 지을 때는 솥이 데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에 45분 정도가 걸려야 밥이 나올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약 25분 정도면 밥이 나온다. 통도사에 초파일 같은 큰 행사가 있으면 대략 최하 1만5,000인분 이상 밥을 짓는데 그럴 때면 밥솥 3개를 풀 가동 한다. 손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후원 스님들을 볼 때면

‘이 사람들이 스님들인가, 밥짓는 기계들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첫날 밥 짓기 전 먼저 경상도 하동이 고향인 무뚝뚝한 일년 선배인 상반두 스님의 짧은 훈시가 있었다.

“스님, 밥짓는 것도 복이요, 신도들이 통도사 와서 절하고 기도하다가 배고파서 공양간 내려와서 밥 드실 적에 얼마나 고맙게 하겠소? 또 정진하시는 스님들이 우리가 지은 밥 드시고 힘내서 도 닦아 부처되면 우리 공덕이 얼마나 크겠소? 그러니 힘들어도 복 짓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다 밥짓는 것도 다 수행인기라…”

말씀을 마치시곤 최소의 장작으로 최대 화력을 내는 방법, 쌀 씻는 방법, 가마솥 소지하는 방법, 삽 닦는 방법 그리고 공양간(供養間)에서 지켜야 할 행동 수칙 등을 말씀해 주셨다.

절집에서 밥짓는 방법은 속세와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솥이 크다 보니 속세처럼 쌀 넣고 물양 맞춰서 끓인 다음 뜸들이게 되면 층밥이 되어버린다. 아래 부분은 타고 중간부분은 익고 윗부분은 설익은 밥이 되어버린단 얘기다.

 

그래서 절에선 먼저 솥에 물을 가득 채우고 팔팔 끓인다. 그 뒤에 쌀을 넣고 뚜껑을 덮은 후 약 1분 정도가 지난 뒤 삽으로 한번 저어준다. 그렇게 세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 뒤 뜰채로 쌀 위에 대고 남아있는 물을 다 퍼낸다.

물을 퍼낸 다음 반쯤 익은 쌀을 골고루 섞은 뒤 뚜껑을 덮고 아궁이에 장작을 으깨서 아궁이 저 끝 안쪽으로 밀어 넣고 몇 분만 뜸을 들이면 밥이 되는데 숙달된 상반두 스님은 모락 모락 올라오는 김의 모양만 봐도 밥이 다 되었는지 덜 되었는지 안다고 한다. 중요한 건 절대 중간에 뚜껑을 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밥이 다 된 뒤에는 밥통에 옮겨 담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양이 많다 보니 삽을 이용해서 밥을 푼다. 밥을 풀 때는 아궁이 안쪽에 밀어 놓았던 숯을 평평하게 깔아 밥을 푸는 시간 동안 솥을 데워 노릇 노릇하게 누룽지를 만드는데 그 맛이 천하일품이다. 밥을 다 푸고 난 뒤 삽으로 쓱싹 누룽지 위를 밀고 당기면 누룽지가 정확한 긴 사각형 모양으로 착착 떨어지는데 그 화려한 손놀림은 새내기 출가자의 혼을 홀딱 빼놓는다.

 

밥짓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물을 얼마나 신속하게 퍼내느냐 그리고 양을 얼마나 남기느냐인데 물 잔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진밥 혹은 고두밥이 되곤 한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다 새내기 하반두에게 시켜도 그 부분만큼은 능숙한 상반두 스님이 하신다. 말은 쉬운 것 같아도 숙련된 고난이도의 기술이 요한다.

상상해 보라! 아궁이에는 장작이 활활 타고 있고 가마솥은 펄펄 끓어 연기와 뜨거운 수증기에 눈뜨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밥 물을 조절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물량을 조절한 뒤 삽으로 신속히 바닥까지 고르게 저어준다. 그래야 밥이 타지 않고 쌀이 타지 않고 골고루 익게 된다.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양의 물을 가득 먹은 반쯤 익은 쌀이 쉽게 움직일 리 없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용을 쓰고 힘을 주어보아도 삽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상반두 스님은 능숙한 솜씨로 쓱싹 마치 시멘트 비비듯 밥을 골고루 젓는데 혼자 보기 너무 아까워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 방송에 내보내고 싶은 마음 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능숙한 상반두 스님도 그렇게 밥을 젓는 과정에선 쌀이 밖으로 튀어 나가기 마련이다.

솥을 젓던 도중 순간 쌀이 몇 톨 튀어나갔는데 그때 나는 넋 놓고 상반두 스님의 화려한 삽놀림을 구경하고 있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만 있는데 상반두 스님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 뭐 하는교!”라고 소리치셨다. 깜짝 놀라 멍하니 서있는데 상반두 스님은 다시 바쁘게 삽을 움직이셨다 이내 밥 젓는 과정이 끝나고 가마솥 뚜껑을 덮고 괭이와 삽들을 정리해 놓으시고선 나에게로 다가와, 아궁이 위 널려있는 숯가루가 묻은 반쯤 익은 쌀들을 가리키며,

“스님, 저 쌀들 보면 무신 생각 안 드는교?”

라고 하셨다. 그리고선 말씀을 이으셨다

”시은이 일미삼근이라 했소. 어림봐도 쌀이 200톨은 될 듯 한데…”

하시면서 솥밖에 떨어진 쌀들을 주워서 입으로 가져가시는 것이었다. 나도 황급히 뛰어가 같이 주워 먹는 도중 순간 가슴이 짜릿해 오는 것이었다. 집안에 아들이 나 하나밖에 없어 출가 전 나를 끔찍히도 아끼셨던 어머니께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시면서 밥을 떠 먹이곤 하셨다.

출가 전 무심코 먹다 버렸던 음식들, 속가 어머니께 툴툴거렸던 생각들이 떠올라 상반두 스님께

“스님 잠시 해우소(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하고선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뚝뚝 떨궜다…. 이는 출가한 이가 속세에 미련이 남아 흘리는 눈물도 아니오,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는 절집 생활이 고되서 흘리는 눈물도 아니다.

이제껏 무명에 덮여 복 까먹는 짓만 하고 살아온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 흘리는 참회의 눈물이요,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참된 수행자로 거듭나는 나의 모습이 뿌듯해 흘리는 눈물이요, 어렵게만 생각했던 복 짓는 일이 너무나 쉽고 명료하게 드러나 환희심 복받쳐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었다.

“부처님 오늘 복 짓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어머니 제가 오늘 복을 지었습니다…“

그 후에도 공양간 반두 소임을 보는 동안 수채에 걸러진 쌀들을 주워 먹으면서 상반두 스님께 때로는 경책 때로는 칭찬도 들으면서 강원 치문반(1년차) 시절을 보내었다.

조금 전 먼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버리는 모습들은 분명 복을 까먹는 짓이다. 한국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그 사람 먹는 게 참 복스럽네. ”, “고 녀석 복 달아나는 짓만 골라서 하네. “등등

우리들이 무심코 쓰는 상용어지만 어떤 행위가 복스러운 행동인지 혹은 볼 달아나는 행동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다.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물질의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영혼적 풍요로움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발전과 산업혁명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하룻밤 사이에 수만권 찍어낼 수는 있게 하지만, 수만명 민중에게 읽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미국아이의 음식낭비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엄청난 경제발전을 짧은 시간에 이룩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케케묵은 절집 이야기를 꺼내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물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특히 미국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한인 2세들의 가치관이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복 까먹는 짓’에 물들면 어떡하나 걱정된다.

TV만 틀면 수백편의 광고가 쏟아져 나오고 온통 일회성 유희(遊戱)가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소중한 산물과 참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절집에 전해 내려오는 “일미삼근(一米三斤)”이라는 말씀이 더욱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pasuny@nate.com
 




이전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발행인 : 洪性仁 l편집인 : 盧昌賢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USA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