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 유공자를 기리는 의미외에도 비공식적으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이날 뉴욕 일원의 수영장과 Beach 공원 등이 정식 개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현충일로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기의 선포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1971년부터 국정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기념을 하고 있다. 올해 메모리얼 데이는 평년에 비해 거의 일주일이 늦다. 5월 마지막 월요일이 마침 5월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작년 메모리얼 데이는 5월 25일 이었고 내년도에는 5월 30일이다.
학자들 사이에서 이 메모리얼 데이의 유래와 변천 과정에 대해 사실 의견이 분분하다. 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노예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승전을 한 북군 Union Army 전사자들을 기리는 데코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최초의 공식 문건이 패전한 South Carolina Charleston에서 이 전쟁에 무고하게 희생된 2800 여명의 어린 애들을 애도하는 신문 보도를 그 효시로 삼는 이들도 있다.
1865년 5월 1일자 기사였는데 이때 Decoration Day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
음해 1866년 5월 5일에 뉴욕주 Waterloo시에서 당시 북군의 장군이자 이 도시 출신이 John Murray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시작했고 이후 매년 이 날을Decoration Day라 명명해 기념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Decoration Day는 그때까지도 앙금이 가시지 않은 남과 북이 서로 제각기 다른 의미로 기념하는 국지적인 행사였다. 여기서 왜 5월이냐는 의문이 다가온다.
이는 남군이 공식적으로 항복을 해서 전쟁이 끝난 1865년 4월 9일에 가까운 날을 택했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인데 사실 크게 만족스런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한번 5월로 기념일이 정해진 이후 날짜는 달랐지만 전통이 굳어져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1920년대까지 국가적 행사는 아니었다. 미국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1차 세계 대전은 사실 미국의 전쟁이 아니었는데 이 전쟁에 파병이 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이 되었다.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자 전 미국적 차원에서 기념행사를 시작하였고 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정신으로 1967년 이름도 Memorial Day로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뉴욕시에서 메모리얼 데이 행사는 브로드웨이 행진도 유명하지만 역시 어제부터 시작된 Fleet week이 행사의 꽃이다. 이오지마 항공모함을 비롯해 무려 30여개 크고 작은 군함들이 뉴욕 항에 정박을 하고 일주일간 머물게 된다.
특히 메모리얼 데이 당일에는 이 항공모함을 일반이들에게 무료로 공개를 해서 함정에 오를 수 있고 이 함대의 군인들 (해군과 해병대 용사들)이 뉴욕시를 활보를 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지난 25일 허드슨 강을 메운 이 장대한 함대의 행렬을 보려고 일부러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베르자노 브리지에 자동차와 인파가 몰렸다는 뉴스를 오늘 아침 접했다.
필자도 구경을 한 번 가볼까 했지만 다리 이전부터 엄청난 교통체증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포기를 했다. 약 일주일간 맨해튼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벌어지고 멋지게 차려입은 군인들과 도심을 누비는 가운데 뉴요커들과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흐뭇한 광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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