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밭 사이로 팔월 오후의 하늘빛이 떨어진다. 26 년간 정들었던 뉴욕을 떠나서 귀국을 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마라톤으로 다져진 체력과 정신력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도 두렵지 않다는 마음은 큰 재산이 되었다. 가족과 친구들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훌훌 털어버리고 내던져도 아쉬움에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그것이 나의 조국이라도 두려움이 반감(反感)되는 것은 아니다.
조국은 모든 것이 낯설게 변해서 마치 외국여행을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려야 했다. 오랜 기억의 조각들과 현실을 대입시키는 일은 도저히 가능하지도 않아보였다. 사실 기억조차도 희미해져서 그것이 과거 속에서 실제 했었는지 아니면 상상 속에 머물렀던 작은 조각인지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소식이 끊어져서 만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모국에서 첫 달리기를 한 강명구씨가 박동주씨와 함께 했다.
박동주 씨와 6 시 반에 장충체육관 맞은 편 태극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충단공원은 동북중학교를 다닐 때 운동장이 작아서 공원까지 뛰어와서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던 곳이고 장충체육관은 악동시절 레슬링경기를 보려고 담치기하다 들켜서 도망가다 잡혀서 묵사발이 되도록 얻어맞은 곳이다. 달리고 샤워를 마친 뒤 뒤풀이를 위해 들어간 음식점이 있는 뒷골목 부근에는 친구들과 자장면을 먹고 튄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 마라톤의 원류(源流)는 자장면 먹고 튀고, 담치기하다 걸리면 튀고, 체육시간에 볼을 차며 뛰던 장충단공원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명당대사 동상으로 올라가던 그 계단을 조폭 같은 선배들을 피해서 달리고, 행당동에 살던 나는 버스 값으로 라면을 사먹고 또 뛰어서 집으로 가야했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인공으로 시냇물을 만들어 놓았다. 물은 인공으로 흐르게 만들어 놓아도 아름답다. 마라톤을 뛸 때 우리는 시냇물 속의 조약돌처럼 서로 각각이지만 이렇게 모여서 함께 달리면 달리는 노고가 줄어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 때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힘을 증폭(增幅)시킨다. 같이 뛰면서 공통의 목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심장이 격정적으로 뛰는 그 진솔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목표가 같다는 것은 확실해진다. 소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거야 하는 선입견은 최악이다.
공원에 무료 사물함이 있고 무료 샤워시설이 있는 것은 최상이다. 가는 곳마다 자전거 도로와 걷고 달리는 주로를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다. 국가의 재정이 튼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국민의식이 있지 않고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 대한민국 만세!”다.
남산 허리를 감아 안는 포근한 연인의 손길 같은 길을 런클 회원들과 함께 달리며 만감이 교차한다. 모든 것이 낯설은데 남산의 푸르른 솔향기가 정겹게 네 몸에 감겨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향기가 이름조차도 희미한 첫사랑의 향기처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서울타워를 향해 올라가는 마지막 언덕길에는 숨이 꽉꽉 막혔다. 미 대륙횡단 완주자의 위엄을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중간에 두 번이나 걷고야 올라갈 수 있었다. 바로 내가 대단한 마라토너가 아닌 것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잘난 체하다가 허리 휘는 것보다 차라리 잘 되었다. 팔각정(八角井)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은 모든 것이 변했지만 느낌은 같았다. 느낌 때문에 가슴이 찡하다. 난 그놈의 느낌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영악스럽지 못한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모든 것이 낯설게 변한 고국을 찾았을 때 마라톤이라는 만국 공용어로 소통을 하니 금방 어색함은 가시고 말았다. 마라톤이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원초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에는 가식이나 낯가림 같은 것은 발붙일 곳이 없다. 그 진솔하고 치열한 언어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다.
왼쪽부터 김재훈 오현정 강명구 박동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