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느니 천혜(天惠)의 절경(絕景)이고 명승고적(名勝古跡)이다. 먹는 것은 다 산해진미(山海珍味)이고 신토불이(身土不二)이다. 6시에 눈을 떠 준비하고 라면에 햇반을 말아먹고 길을 나섰다. 갈비집과 이동막걸리 직판장이 있는 다소 번잡한 도평삼거리에서 백운계곡을 따라 9.2 km의 험한 언덕길을 넘어야 한다. 계곡을 따라 평상과 방갈로 펜션들이 들어서 있었다. 맑은 물과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절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거친 언덕길을 70kg나 되는 짐을 밀면서 오르는 길은 힘들었지만 위로가 되었다. 가끔씩 불어주는 산바람은 땀을 씻어주기에 알맞았다.
언덕을 넘어가는 내 숨소리도 거칠었지만 차들의 숨소리도 거칠다. 다만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 경쾌하다. 구름 그림자가 산 중턱에 내려앉아 있을 무렵 나도 돗자리를 펴고 주저앉아 한참을 쉬다 다시 오른다. 나는 산을 오르고 산바람은 산에서 내려와 나를 반갑게 맞는다. 이 힘든 고개를 넘어서도 가야할 곳이 있다. 만나야할 이야기가 있고 들어야할 소리가 있다. 환희(歡喜)에 넘친 사람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 그리고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나는 애가슴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나고 올 것이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떠오르는 태양!
백운산 정상에 오르니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境界)이기도 하다. 여기서 반대로 내려가면 이제 광덕계곡이다. 사진을 몇 장 담고 있는데 옆에 가게 아주머니가 금방 찐 강원도 찰옥수수를 건네준다. 개시도 안한 옥수수를 어떻게 그냥 먹냐고 돈을 지불하려 하자 극구 사양을 하신다. 찰옥수수와 함께 강원도 인심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바깥주인이 나와 이곳은 예로부터 경기도와 광원도의 특산물을 파는 장이 열렸다고 한다. 여기가 약 670 고지인데 인간의 신체에 700 고지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렇게 공기도 좋고 인간 신체에도 좋은 곳에서 사시면서 인심도 좋은 아내와 사시니 정말 행복하시겠다고 했다.
광덕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멋진 장승이 서있어서 다가가보니 광덕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던 천년 묵은 소나무가 폭설로 고사(枯死)하자 마을사람들은 뜻을 모아 장승으로 환생을 시켰다. 그 바로 밑에 할머니 두 분이 밭 옆에서 토마토를 팔고 계시는데 토마토 한 개만 살 수 없냐고 물으니 개시만 아니면 그냥 주는데 100원만 내라고 한다. 너무 미안해서 세 개를 집고 천원을 드렸다. 이번에도 토마토와 함께 강원도의 인심을 다시 먹었다.
사내중학교 부근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아직 점심이 이른 것 같아 그냥 지나치고 보니 식당이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이제 길은 곡운구곡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곡운이라는 성리학자가 아홉 구비의 계곡에 이름을 붙어서 곡운 계곡이라고 부르는데 모두가 화강암의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구름도 휘어간다는 아홉 계곡을 돌고 돌아 거친 언덕을 벌써 몇 개를 넘었는지 모르겠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라는데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들린다. 식당은 없는데 다행히 약수터 옆에 약초가게에서 감자전과 감자떡을 판다. 강원도에 와서 강원도의 명물 감자떡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약수로 갈증도 해소하고 감자떡으로 주린 배도 채우고 잠시 지친 몸을 쉬게하니 마음은 그냥 머무르려한다.
다시 원기를 차려 화천시 방향으로 달려간다. 아직도 한낮의 햇살은 달리는 이를 괴롭힌다. 얼마가지 못하고 휴게소가 있어 잠시 쉬러 들어갔더니 짐차에 빈 박스가 가득 실렸고, 두 부부가 정겹게 자리를 펴고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하니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금방 감자떡을 사먹었다고 하니 사과와 이것저것을 건네준다. 또 강원도의 인심을 맛있게 먹었다.
화천에서 북한강을 만났다. 화천입구에는 ‘산천어와 수달이 사는 물의 나라 화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인상적이었다. 화천에만 산천어와 수달이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어디에도 산천어와 수달뿐 아니라 호랑이도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원래 이 땅 위에 살던 모든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땅이었으면 좋겠다. 옆으로 탱크의 행력이 굉음(轟音)을 쏟아내며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