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나선 美대륙 5200km 횡단(3)
LA에는 몇 개의 한인 마라톤 클럽이 있다. 워낙 지역이 넓으니 몇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서 모이는 것 같다. 토요일 아침에는 이지 런너스 클럽에 나가 함께 달리고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최성권씨와 함께 KAAT 클럽에 나가서 인사를 했다. LA와 뉴욕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른 것 같다. 뉴욕에서는 매일 같이 뛰던 사람들이라 내가 보통의 마라토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보통의 마라토너가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것에 회의적이었는데 LA에서는 상대적으로 나를 잘 몰라서 그런지 내가 도전하는 엄청난 일 자체에 갈채를 보내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익숙하지 못한 갈채에 머쓱했지만 어쨌든 나는 긍정적인 반응이 맘에 들었다.
There are several Korean marathon clubs in LA. The area is so large that they seem to be gathering by several regions. On Saturday morning, I went to the EASY Runners Club, ran together with them, ate breakfast at McDonald's. After that I visited the KAAT club with Choi Sung-kwon again in order to greeted its members. I think the way they look at me in LA and New York is different. In New York, people who used to run with me every day that they know I am an ordinary marathoner so well that they are skeptical about my challenge such a great job, but in Los Angeles, they are relatively unfamiliar with me, so they applaud the tremendous task I am going to challenge. I shrugged off such unfamiliar applause, but I liked the positive response anyway.
출발 전날은 LA에서 식량과 연료 그리고 여벌의 운동화도 장만하면서 모자란 보급품을 채우고 최성권씨와 삼겹살과 맥주로 만찬을 하고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6시에 헌팅턴 비치에 도착하였다. 처음에 뉴욕에서 출발할 때는 이 헌팅턴 비치를 출발지점으로 예정하고 왔는데 현지 사람들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On the eve of my departure, I packed food, fuel and extra sneakers, filling up supplies, and had dinner with Choi Sung-kwon with pork belly and beer. Next Morning I got up at 4:30 a.m. and arrived at Huntington Beach at 6. When I first left New York, I planned this Huntington Beach as my starting point, but the locals advised me it would be better to start at Santa Monica Beach, which has historical significance. So I decided to do so.
산타모니카 비치는 66번 국도가 끝나는 곳이다. 66번 국도는 미국 최초의 동서를 잇는 고속도로이며 서부개척 시대의 중요한 길이었다. 1946년 밥 트루프가 만든 ‘66번 국도’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서부로 드라이브를 하신다면 내가 권하는 하이웨이를 지나가 보세요. 그것은 시카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곧장 뚫렸어요. 약 4,000km는 충분히 되지요!”
Santa Monica Beach is where Route 66 ends. Route 66 was America's first East-West highway and was an important road in the Western Construction Era. Created by Bob Troupe in 1946, the song "National Road No. 66" begins like this : "If you're driving west, just take the Highway as I suggest. It is directly through from Chicago to Los Angeles. About 4,000 kilometers is enough!"
2월 1일 아침이 밝았다. 마침 헌팅턴비치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출발하기 전 거기에 가서 먼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한인 마라톤 클럽회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의 여행의 취지를 설명하고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고 다시 출발지점인 산타모니카에 도착했다. 헌팅턴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고 철도 부호 헨리 헌팅턴의 이름을 따서 지명으로 삼았다. 석유가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It dawned on the morning of 1 February 2015. The Huntington Beach Marathon was being held, so I went there first and greeted the Korean marathon club members who participated in the marathon. I explained the purpose of my trip and was encouraged more than enough and arrived at Santa Monica, where I started. Huntington is famous for its beautiful beaches and named after railroad man Henry Huntington. It is also where crude oil is being produced.
아열대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건조하면서도 햇살이 풍요롭게 내리는 켈리포니아의 낭만적인 해변 산타모니카는 오늘 아침 구름은 잔뜩 끼고 날씨는 쌀쌀하다. 태평양의 바다냄새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옛사랑의 냄새처럼 아련하게 펴져온다. 저 바다의 끝에는 우리 조국이 70년 째 아직도 두 동강이 난 채 놓여 있다. 무슨 이유인지 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오래되었건만 평화협정조차 체결되지 않고 있다.
Santa Monica, California's romantic beach with a subtropical mediterranean climate that is dry and sunny all year round, is cloudy and chilly this morning. The smell of the Pacific Ocean still unfolds like the haunting smell of the old first love. At the end of that sea lies my homeland, Korea still divided in two halves for 70 years. For some reason, even a peace treaty has not been signed, even though the fire of the war has stopped for a long time.
드디어 첫 발자국을 뛰었다. 태평양의 이쪽 끝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미대륙을 가로질러 대서양의 저쪽 끝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내 몸의 근육 만에 의지하여 달려서 가는 것이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서서 끝없이 달려간다. 새로운 삶을 찾아 서부로 서부로 이동하던 그 옛날 서부개척자들처럼 그러나 나는 서부에서 동부로 59세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러 달린다. 동부지역의 노동자들과 중부지역의 농민들이 꿈을 찾아 서부로 달리던 길 66 번 길을 거슬러 달린다.
At 9 a.m. on 1 February 2015, I finally ran my first step of this long journey. From the Santa Monica beach on this end of the Pacific Ocean to the far end of the Atlantic Ocean, running only on the muscle of my body without using fossil fuels. I have to run and run eastward endlessly against the rising sun in the east. Like those old westerners who moved west to find a new life, but I run from west to east to design a new life at the age of 59. I will run back on Route 66 where workers in the eastern part of the country and farmers in the central part of the country ran westward in search of their dreams.
달리면서 이모작 인생의 새로운 설계를 하고, 달리면서 남북통일이 내가 가는 길보다 더 험하고 멀 지라도 남북한 모든 시민들 가슴 속에 작은 불씨로 잦아들어 있는 통일의 꿈을 되살리고 싶다. 불씨는 바람과 만나 커지고 불씨는 불씨와 서로 만나 들불처럼 번져갈 것이다. 나는 앞으로 닥칠 모진 고통과 외로움을 만나서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I would like to make a new design of my second life while running, and revive the dream of unification, which remains as a small spark in the hearts of all citizens of the two Koreas, even if the 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is more severe and far than my way. The small fire will grow larger when it meets the wind, and the fire will spread like wildfire when it meets each other. I will become more mature by meeting the harsh pain and loneliness that lies ahead in this trip.
길을 떠난다는 흥분이 태평양의 파도처럼 일렁인다. 가족과 친구들과 격리되어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포스럽기까지 할 환경 속으로 뛰어든다는 슬픔도 함께 찾아왔다. 공항에서부터 LA 일정의 침식부터 모든 편의를 제공한 최성권씨, 그리고 KART 클럽 회장 피터 김, 오늘 헌팅턴 마라톤에 등록하고도 일정을 취소하고 동참해준 박상천씨. 헬렌 박, 또 시카고에서 내려오신 김평순님이 첫 출발을 같이하면서 59세에 떠나는 특별한 여행을 격려해주시며 서툴고 외롭고 힘든 첫 출발을 도와주려 같이 뛰어주었다. 최성권씨 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이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첫 출발하는 어려운 발걸음을 도와주는데 우리 모든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유전자처럼 가지고 있는 통일의 작은 불씨를 모아서 합치면 통일의 열망은 금방 다시 훨훨 타오를 것이다.
The excitement of going off the road is rolling like the waves of the Pacific Ocean. I have I been surrounded not only with the feeling of isolation from my family and friends, but also with the feeling of the sadness of jumping into a frightening environment.
Choi Sung-kwon, who provided all the conveniences, including food and accommodation from the airport, and Peter Kim, president of the KART club, and Park Sang-chun who canceled the Huntington Marathon today, and Helen Park, and Kim Pyong-soon who came down from Chicago, ran together with me at my first start, encouraging me to take a special trip at the age of 59 who was jumping into a bad, lonely, and difficult journey. All but Choi Sung-kwon are new faces to me, but they help me at the difficult first step of to such a lone and risky trip for the only reason they are Koreans, so if we combine the small spark of unification that we have in the hearts of all Koreans like genes, the desire for reunification will quickly flare up again, I think.
저 멀리 산타모니카 산맥의 동쪽 끝, 할리우드 산의 남쪽 산중턱에 있는 그리피스 파크 언덕에 우뚝 서있는 ‘헐리웃’ 사인이 크게 보인다. 베버리힐스로 들어서니 루이뷔통 등 명품 매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할리우드가 가까이 있어서 유명 영화배우들이나 사업가들이 호화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한 곳이다. 이곳도 원래는 인디언들이 살던 곳이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마저도 부촌의 향기가 난다.
Far away, at the eastern end of the Santa Monica Mountains, I can see the 'Hollywood' sign standing tall on the hill of Griffith Park on the southern side of the Hollywood mountains. Entering Beverly Hills, luxury stores such as Louis Vuitton were lined up. Hollywood is so close that famous movie stars and businessmen have begun to build and live in luxury. This is also where the Indians used to live. Even the trees along the street smells like a charm of richness.
그리고 곧 우리는 LA의 한인 타운을 거쳐 한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자바시장을 통과하여 지나갔다. 자바시장 한편에는 홈리스들의 텐트촌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이리저리 나뒹구는 쓰레기와 깨진 술병조각, 딱히 목적지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시궁창 썩는 냄새 속에 섞인 마리화나 냄새 그리고 마약에 동공이 게슴츠레한 저 처연한 눈동자들. 택시운전자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미국의 현실이다. 이곳에도 빈부의 격차는 있어서 텐트라도 치고 어엿한 자신만의 공간을 갖은 사람은 부자 축에 든다고 한다.
And soon we passed through the Korean town of L.A. and the Java market, where Koreans dominate the commercial market. On one side of the Java market, the tent camps of the homeless are lined up endlessly. Trash and broken pieces of liquor bottles, people wandering aimlessly, the smell of marijuana mixed in the rotting smell, and those grimy sad eyes puffed up with drugs. It is a heartbreaking reality in the United States that innocent children are playing in places where even taxi drivers do not want to go. There is also a gap between rich and poor even here, so people who have their own space in tents are said to belong to the rich.
미국의 정치인들이 이런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다른 나라의 인권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베버리힐스를 방금 지나왔는데 그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미국의 한가운데로 풍덩 뛰어들다 보니 첫날부터 이런 적나라한 보습이 보인다. 미국에서 도시의 빈민가를 보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국 같은 풍요로운 나라에서 집을 잃고 집단으로 도시의 한구석에 거주할 수 있을 까? 단순히 저 사람들이 천성이 게으르고 모자라서 그럴까? 부와 가난의 적나라한 대비를 한눈에 보면서 내 눈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미국의 환부를 대륙횡단 첫날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미국은 정령 아무런 해결책을 가지지 못한 것일까?
It is also irony that politicians in the U.S. are turning their eyes from this reality and focusing on human rights in other countries. I just passed Beverly Hills, the envy of almost everyone around the world, and it's amazing that there is such a poor community not far away from it. As I dive into the middle of the U.S., I can see such naked reality from the first day. It's not surprising to see urban slums in the United States, but how can so many people lose their homes in affluent countries like the United States and live in one corner of the city as a group? Is it simply because they are lazy and lacking in nature? Seeing at a glance the stark contrast between wealth and poverty, I find it confusing to see the diseased part of the U.S. that is so unbelievably serious to my eyes on the first day of crossing the continent. Has the U.S. not had any solution to it?
캘리포니아란 이름은 스페인의 탐험가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낙원 또는 환상의 섬이라는 의미이다. 캘리포니아는 실제로 따스하고 온화한 날씨와 풍부한 자원과 자연경관이 낙원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다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골든 스테이트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낙원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에게는 바램이 없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낙원에 살면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장미와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낙원에서 추방되어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처참하게 지내는 그들은 이제 엄청나게 많은 희망이 있겠구나 생각했다. 지금 나도 큰 희망을 가슴에 품고 달린다. 언제나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눈앞에 있다.
The name ‘California’ means paradise or fantasy island in the novels of Spanish explorers. California actually has warm, mild weather and abundant resources and natural scenery of paradise. Then, as the gold rush begined, it’is sometimesbeen called ‘the Golden State’. I thought the Indians, who were the masters of this paradise, had no wish. What more did they want to live in a paradise with everything in it? Is it said that hope is like a rose blooming in despair. Having been banished from paradise and left the Indian reservation in a bad state, it occurred to me that there was a great deal of hope to them now. Now I am running with great hope in my heart, too. The road to the vast expanse of paradise is not always far away, but right in front of us.
by Kang Myong-ku
translated by Song In-yeup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