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걷고 있는데 길옆에 종잇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눈의 동공(瞳孔)이 더 크게 열리며 그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았다. 5위안짜리 지폐이다. 그것을 집어드는 손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5위안이면 시원한 콜라 한 병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肖像)이 새겨진 작은 돈이지만 그것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았다. 중국의 돈은 1위안, 5위안, 10, 20, 50, 100위안 모든 지폐에 마우쩌둥이 초상이 새겨졌다.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신사임당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다 골고루 들어간 것과는 다르다.
내 비록 옌안이라는 도시는 안 지나지만 이곳 산시 성(陕西省) 옌안(延安)은 마오쩌둥의 홍군이 길고 고통스러운 대장정(이라 쓰고 삼십육계줄행랑이라 생각하면서 통일마라톤이라 의미를 부여한다.)을 마치고 자리 잡은 곳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춘추전국시대 이래 다시 여러 군벌세력으로 갈라졌던 중국통일의 기틀을 잡은 곳이다. 이곳은 중국공산당 혁명사령부와 인민정부를 두고 중일 전쟁을 지휘하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산실이자 혁명의 성지이다. 그리고 초창기 김일성과 함께 권력지형의 한축을 이루었던 ‘화북조선 독립동맹의 옌안파와 연관이 있기도 하다.
마오쩌둥은 미약한 세력으로 시작하여 12,500km에 달하는 대장정, 통일 마라톤을 하면서 미국 및 유럽 열강들의 후원을 입은 국민당 정부를 타이완(臺灣)으로 밀어내고 베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위대한 혁명가, 사상가, 전략가이자 중국 건국의 아버지이다. 대장정을 출발하는 그날에는 들것에 실려 가는 환자인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별 볼일 없던 마오쩌둥은 이 통일마라톤을 통해서 중국인민들의 마음을 얻고 강해지면서 마침내 중국인민들의 우상으로 숭배자로 치닫게 된다.
마침 내가 지금 368일에서 열흘 빠지는 358일째 달리고 있고 거리도 12,500km쯤 달리고 있을 때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지금 지나고 있는 션무(神木) 시 근교에는 석탄광산이 산재해있다. 중국에서 석탄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션무지역이다. 지금까지는 바퀴 22개 달린 트럭이 지나갈 때 일으키는 황사 먼지구름 때문에 고생했다면 이곳에는 검정 연탄 먼지구름이 달리는 나를 고문한다. 아마 마오쩌둥의 홍군이 이곳을 지날 때는 저 바퀴 22개 달린 괴물들은 없었으리라! 14억 중국인민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면 저 괴물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928년 말까지 북벌(北伐)을 완료하고 이제 공산당만 제거하면 중국 통일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는 1930년에서 1933년 3월까지 4차례 장시 성 루이진에 있던 공산당 토벌작전에 나서지만 모두 실패하자 1933년 10월부터 50만 대군과 외세인 구미열강의 원조로 들여온 항공기와 최신무기를 앞세워 제 5차 토벌작전을 개시했다. 공산당의 10만여 명이 포위망을 뚫고 대장정이라고 불리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고난의 행군을 강행했다.
마오쩌둥이 대장정, 통일마라톤을 하면서 국민당의 장제스와의 대결 장면은 항우와 유방의 대결보다 더 극적이다. 모두 11개의 성과 24개의 강, 천여 개의 산을 넘으며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이어지던 대장정은 1935년 10월 20일 산시 성 옌안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다. 이때 10만여 명 중에 7천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나중에 제 2방면군과 제 4방면군이 합류하여 모두 3만여 명의 홍군이 살아남았는데 이들은 중국공산당의 최정예군으로 그 후 항일전쟁 승리와 중국 공산화 통일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스펜스가 쓴 마오쩌둥 평전,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에는 “그들이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은 ‘모든 고난을 함께, 평등하게 짊어진다.’는 원칙이었지요.”라고 쓰고 있다.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난을 인민들과 병사들과 나누어 짊어지고 인민들의 민심을 얻었다. 그 힘으로 중국의 독립과 주권을 회복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외세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한 중국인민들의 굴욕감을 씻어주었고 관료들을 견제하고 인민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하여 중국의 자립의 기초를 세웠다.
마오쩌둥은 36계 줄행랑을 치면서 승리를 거둔 36계 병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는 두 가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나는 외세의 침략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고 중국을 재통일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이가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첫 번째 임무를 성공했으나 두 번째 임무는 실패했다. 그래서 그는 공도 크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크나큰 과오(過誤)도 남겼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무려 4천만 명 이상의 중국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마오 주석이 1956년에 죽었더라면 그의 업적은 불멸로 남았을 것이다. 만약 1966년에 죽었더라면 과오는 있지만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76년에 죽었다.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천윈(陳雲)은 이렇게 마오에 대하여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과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국인민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현대중국의 시원(始原)은 바로 368일간 12,500km를 돌파했던 통일마라톤에서 찾을 수 있다. 368일간 통일마라톤을 통해 단련되고 거듭난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샤오핑(鄧小平) 등 인재들은 그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의 뒤를 이었고 그들은 중국을 결국 21세기에 G2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도 이때의 동지이다. 현대중국은 끝없이 달리면서 잉태됐고 달리면서 생존본능을 키웠고, 죽음의 행군 속에서 인재가 키워졌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동아시아 현대사이다. 장강의 물결처럼 장대한 행군의 흔적 마오쩌둥의 통일마라톤. 불굴의 의지와 정신 그리고 혁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물리적 어려움도 이겨 내며 상황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신념과 연결되어 있다. 80년 전의 일이지만 오늘날에는 시진핑의 담대한 도전인 일대일로(一带一路)가 유라시아의 평화시대를 막는 만리장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여는 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