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전문필진 l 사진필진 l 열린기자 l Kor-Eng    
 
한국필진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222)
·국인남의 불편한 진실 (11)
·김영기의 민족생명체 (18)
·김정권(Quentin Kim)의 음악 (6)
·김지영의 Time Surfing (25)
·김해성목사의 지구촌 사랑나누기 (62)
·노이경의 사람과 사람사이 (2)
·박기태의 세계로가는 반크 (80)
·박상건의 삶과 미디어 읽기 (5)
·서경덕의 글로벌코리아 (3)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140)
·유현희의 지구사랑이야기 (12)
·이래경의 다른백년 (38)
·이재봉의 평화세상 (77)
·이춘호의 이야기가 있는 풍경 (5)
·정진숙의 서울 to 뉴욕 (22)
·최보나의 세상속으로 (7)
·켄의 글쟁이가 키우는 물고기 (6)
·한종인의 시어골 편지 (23)
·혜문스님의 제자리찾기 (27)
·황룡의 횡설수설 (52)
·흰머리소년의 섞어찌게 세상 (10)
실시간 댓글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저는 절대로 엘리트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보통 마라토너는 다 할 수 있고 제가 못 해도 다른 마라토너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을 하는 거지요.

총 게시물 222건, 최근 0 건 안내 RSS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평화와 희망의 빛두렁길

다시보는 나홀로美대륙횡단(1)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19-09-13 (금) 09:46:56

한영칼럼 뉴스로 연재

송인엽교수 영문 번역

      

 

평화마라토너강명구 뉴스로 칼럼니스트는 지난 2015년 아시안 최초로 미대륙을 아무런 조력자 없이 나홀로 마라톤으로 횡단(5200km)하는데 성공했습니다. 20179월부터 201810월까지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 대륙 1만6km의 대장정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뉴스로가  강명구 마라토너의 미 대륙횡단의 감동어린 여정을 한글과 영문 칼럼으로 연재합니다. 영문 원고는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유라시아대륙횡단을 할 때 다섯 차례나 구간을 함께 한 국제협력전문가 송인엽 교수가 번역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10991283_732407300190880_5296451671712092432_n.jpg



 

 

나는 지금 본의든 아니든 실업상태가 되었다. 무언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중요한 시기를 맞기도 하였다. 지금껏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순응하며 아등바등 살기 위해서 돌보지 못한 나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기도 하다. 오십대의 나이에는 여행 가방을 풀어서 정리할 때가 아니라 이제 비로소 설레는 마음과 호기심을 안고 진정한 인생 여정 길에 나설 여행 가방을 꾸릴 때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남들 눈치 보면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조금씩 자기를 지우고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그리기 시작할 때이기도 하다.

I'm now in unemployment, whether it's my intention or not. This is an important time when I must begin something as my second life. And it is also time to reflect on my life that I have never cared for in order to live up to with all my energy conforming to the universal values of society. At the age of fifties, I began to realize that it was not time to unpack and clean up my suitcase, but to pack it with excitement and curiosity to embark on a true journey of life. If I've gradually erased myself to survive in competition so far, it's time to start painting a new look for myself setting out a journey to find myself.

 

 그동안 나는 중국에서 자동차 액세서리를 조금씩 수입해서 도매를 하며 생활해 왔다. 그런데 경기가 안 좋아져 무언가 부수입이 필요해 식당업을 부업으로 시작해 한 2년을 했는데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느라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였다. 한 가지 일이 잘못되면 여러 가지가 엉켜버린다. 마치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에 앞이 막막했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면 더 멀리 가기 전에 멈추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돈 몇 푼 건지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면 현실의 노예상태를 벗어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확실히 길을 잃었다. 길을 잃어서 행복하다. 길을 잃어 새 길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순간 기꺼이 길 잃어버림을 즐기려 한다.

In the meantime, I have been importing car accessories from China and selling them wholesale in America so far for my living. However, because the economy was not good, I started the restaurant business as a side job for about two years, and I was under a lot of stress because I was doing things that were not suitable for myself. If one thing goes wrong, many things get tangled up. I was at a loss for a sense of uneasiness, as if I were going on a path which was not a path for me. I began to think it was wisdom to stop before going further if I was on the wrong path. I thought that I could not escape from the slavery of reality, if I tried not to loose my little money desperately. I'm certainly lost now.

But I'm happy to be lost. Because I got lost, I could start something to find a new way. Therefore, at this moment, I am willing to enjoy the loss of my way.

 

스스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적성에 안 맞는 식당 일을 하느니 예측불허의 위험에 스스로 노출시켜 그 위험의 꺼풀을 하나씩 벗겨내는 쾌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거기서 발견하는 내 안의 나와 가슴 벅찬 조우를 하는 거다. 온갖 시련과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새로운 인생과 극적이고 로맨틱한 만남을 꿈꾸면서 말이다.

I made myself a situation where I had nothing more to lose. Rather than working at a restaurant that was not fit for me, I wanted to enjoy the pleasure of exposing myself to unpredictable dangers and peeling off the risks one by one. I’ll have a heart-to-heart encounter with myself that I find there, dreaming of a dramatic and romantic encounter with a new life that can be seen only after passing through a tunnel of trials and suffering.

 

떠나기 전 나는 시시때때로 닥쳐올 위험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지금껏 만나지 못한 세상과의 경이로운 만남의 감동이 그 두려움을 덮어버리고 만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변화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모험가나 탐험가로 살아오지 않은 평범했던 일상들이 더욱 더 이번 특별한 여행을 두려움으로 떨게 한다. 그러나 지금 이후에 최고의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인식이 나를 멀고 험한 길을 떠나게 한다. 달리면서 얻어진 무한한 상상력과 달리면서 튼튼해진 두 다리의 만남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꿈꾸어왔던 먼 곳으로 끝없이 달리는 특별한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데 도움을 주었다.

Before I leave, I'm terrified, imagining the dangers that will face me frequently, but the sensation of a wonderful encounter with a world I've never met is covering up that fear. It's true that as we get older, we get more and more afraid of change. The usual routine of not living as an adventurer or explorer makes this special trip even more frightening. But the perception that I'll have the best life after this makes me go on a long, dangerous road. The meeting of the infinite imagination and the two strong legs, gained from running, helped me put into practice a special journey that’ll require an endless running to a distance that had been vaguely dreamed of since my childhood.

 

달릴 때 나는 내 몸에 시원을 알 수 없는 싱그러운 생명의 물이 흐르는 것 같은 환희를 만끽한다. 그 기쁨이 나를 끝없이 달리고픈 열망에 빠뜨리게 한다. 끝없이 달려서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고 대평원을 지나 거기서 보이는 진정한 나의 모습과의 진지한 만남을 꿈꾼다. 대자연의 절경, 새로운 세상, 낯선 사람들을 동경하며 끝없이 달리면서 얻어지는 자기초월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상처를 어루만지지만 또 한편으로 달리면서 대지의 친구가 되어주고 대자연의 아픔을 어루만져준다. 외부와 고립된 채 우주의 근원에 직면하는 기회를 가지는 일은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가슴 벅차다.

When I run, I fully enjoy the joy that the water of life seems to flow through my body, which I cannot tell the source. The joy drives me to the ardent desire to run endlessly. I dream of meeting seriously with my true self there after running endlessly across the desert, across the mountains, across the river and across the Great Plains. I want fully to enjoy the time beyond myself that I get from running endlessly in admiration of the wonderful views of great nature, the new world and strangers. As I run, I comfort myself and touch my wounds, but on the other hand, I become friends of the earth and embrace the pain of Mother Nature. It is heartbreaking to imagine having the opportunity to face the source of the universe, isolated from the outside world.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값진 경험을 원할 때가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서 거기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고도 기꺼이 그것을 얻기 위해 홀연히 뛰어들 용기가 있다면 그건 내가 아직 청춘의 한가운데 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나는 끝없이 펼쳐질 광대무량한 미대륙을 가로지르면서 달리며 내 삶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 내 생명의 시원을 찾아 갈증을 해소하려 한다.

Sometimes we want the most precious, beautiful, and valuable experience.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So, if I am willing to jump in to get it at a corresponding price, you may say that I am still in the middle of youth! I’ll run across the vast American continent that will unfold endlessly, trying to find the source of my life and quench my thirst, dating back to the trajectory of my life.

 

고난과 역경이 오히려 생명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기둥이라면 때로 삶의 어느 한쪽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더 큰 고난과 고통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어서 변화를 꿈꾸어도 좋으리라. 명태가 따뜻한 햇볕과 눈 실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황태로 거듭나듯이 미대륙 횡단 마라톤을 하면서 사막의 햇볕과 로키 산맥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내 스스로 융해와 응고를 거듭하면서 거듭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내게는 대자연의 영혼과 영매를 이루며 건강 전도사로 마라톤 작가로, 통일 운동가로 태어나기 위한 신내림굿 같은 것이다.

If hardship and adversity are the pillars that support our life, we can dream of change by throwing ourselves into greater hardship and pain when we sometimes feel like one corner of our life is falling down. Just as pollack froze and melted repeatedly in the warm sun and snowy cold wind and become and become the best procuct finally , I’ll run a cross-American marathon and try to melt and coagulate repeatedly in the desert hot sunshine and in the cold wind of the Rocky Mountains and to be born again. This trip will be like a kind of religious observances for me to be born a health missionary, a marathon writer and a unification activist as a spiritual brother to the spirit of Mother Nature.

 

이 특별한 여행을 통하여 내 가슴 속의 불씨와 사람들 가슴 속의 불씨가 서로 교통하는 통로를 찾고 싶다. 불씨는 불씨와 만나 더욱 훨훨 타오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작은 불씨에 풀무질을 하는 감동적인 문장 한 줄을 받아들고 싶다. 이 광활한 대륙을 달리면서 영혼이 사방팔달 다 통하고 나면 생명은 더 활기에 넘치고 자유는 확장될 것이다. 사막의 지는 노을과 깊은 산 속에 맺히는 아침이슬과 대평원의 지평선 저 넘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깊은 침잠 속에서 사유하며 큰 지혜를 얻고 싶다.

Through this special trip, I would like to find a passage where the fire in my heart and the fire in people's hearts can travel to each other. This is because the fire burns even more fiercely when it meets the other fires. Through this journey, I like to receive a line of moving sentences that blows with the belows the small fire in people's hearts. Life will be more vibrant and freedom will be expanded after the soul communicates in all directions while running through this vast continent. Looking the sunset at the desert, morning in the deep valley and the morning sun above the horizon of the Great Plains, I want to gain great wisdom by thinking in a deep stillness.


10955596_720745591357051_6298623006909785252_n.jpg

 

 

마라톤이 아름다운 건 누구나 다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안타깝게도 마라톤은 특별하다. 마라톤이 특별한 건 누구나 다 마라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 beauty of the marathon is that anyone can do it. But unfortunately, and regretfully marathon is special. What's special about marathon is that we don't think anyone can do it.

 

나는 어떻게 보면 평범 이하의 사람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그 흔한 공책이나 연필을 상으로 받아 본 적이 없고 반 대항 축구경기에 뛰어 본 적이 없다. 군대의 훈련소에서는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 언제나 마지막까지 얻어맞으며 달려야 했다. 그래도 잔머리는 있어서 얻어맞으며 마지막까지 힘들게 달리느니 안 뛰고 얻어맞는 일만 택했더니 자대에 배치되어서는 고문관으로 낙인이 찍혔었다. 지금 말하는 관심 사병이었다. 군대생활 3년 하는 동안 10km 완전군장 구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군인이면 매년 한 번씩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유격훈련도 한번 받아본 경험이 없다. 무슨 검열이라도 나오면 내가 있으면 부대 전체 성적이 떨어진다고 아예 외출이나 외박에 내보내졌다. 그러다 제대말년에 안 해도 될 10km 완전군장 구보를 추억 만들기를 한다고 말년병장의 위세로 도전을 했었다. 처음에는 군화 끈이 풀어져서 몇 번 주저앉아서 다시 조여매고, 그 다음에는 반합뚜껑이 딸가닥거려서 주저앉아서 다시 조여매고 하다가 아마 지금 기억으로는 3km도 못 가서 뒤따르는 엠블란스에 실려서 온 뼈아픈 기억까지 있다.

I'm below an ordinary person in a way. I've never won a prize of that common notebooks or pencils or I've never played in a class-to-class football game in my elementary school athletic meeting. In military training camps, at the running on a first- come- first-served basis I always had to run, being beaten to the last. Later smartly I chose not to run after being beaten first rather than to run to the end while being beaten. So when I was assigned to the permanent post after training, I was branded as ‘a problem soldier’. I was ‘a soldier of interest’ in these days. During my three years in the army, I've never done a 10km running in full combat uniform, and I've never had done a guerilla raid training which was mandatory once a year to every soldier. If there was any inspection from the upper, I was given ‘a special sleeping out’ because my commander worried that the average record of the entire unit's performance would be reduced. Then, in my final years of service, I challenged myself with the power of the senior soldier, in order to make memories of a 10km running in full combat uniform, but I failed at the position of 3km and returned back in the ambulance.

 

그런 내가 50이 넘어서 달리기를 시작하여 마라톤을 하고 첫 마라톤에서 서브 포를 기록하면서 나이별 2등을 했고 마라톤 세 번 만에 모든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의 무대인 보스턴 마라톤 출전자격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80km 산악마라톤에는 두 번 만에 성공을 했다.

I, such like that, started running beyond 50 years and recorded sub 4 in my first marathon resulting second by age, and after three marathons, I proudly won the Boston Marathon qualification, a dream stage for all amateur marathoners. I succeeded in my second attempt at the 80km mountain marathon.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이라는 무림의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고수들이 있다. 그 수많은 마라톤의 영웅들도 감히 입조차 뻥끗하기를 망설이는 미대륙횡단이란 카드를 내가 들고 나왔을 때, 그것도 누구의 도움이나 스폰서도 없이 단독으로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의 표정이 진지한 것임을 알고는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As you know, there are countless masters in the "world of the jungle" of marathon. Those marathon heroes, who did not dare to even open their mouth, didn't even answer back when I said I would do Trans-American Marathon on my own without anyone's help or sponsorship, because they thought I was joking. Knowing that my expression was serious, some people reacted cynically.

 

이번 여행은 어떻게 보면 시상이 떠오르듯이 생각난 여행이었다. 생각은 내가 미국생활 26년 동안 휴가다운 긴 휴가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는 데서 출발을 했다. 이민생활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해져 가는 것 같았다. 긴 여행을 하고 싶었다. 긴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정리를 할 것이 있었고 마음의 다짐을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압감으로 내리누르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이모작 인생을 설계하는 중년 사춘기의 성장통 같은 것을 치유해야 하기도 했다. 중년 사춘기는 초반 사춘기보다 더 열병처럼 찾아왔다. 안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것들을 꾹꾹 내리누르기만 했던 세월, 이제는 어디 오지 같은 곳을 찾아가 다 토해내고 오지 않으면 폭발하고야 말 것 같다. 여행이라면 마라톤 여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라톤이 명상하기에 좋다는 것을 마라톤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알기 시작했다. 끝없이 몰려오는 고통과 위기상황을 넘기면서 얻어지는 환희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 너머에 아련히 보이는 잊혀진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It was a trip that came suddenly to mind like a poetical inspiration in a sense. The thought started from that I never had a long vacation during my 26 years of American life. Immigration life was not so easy by all means; the body and mind seemed to be becoming increasingly impoverished. I wanted to make a long trip. On a long journey, there was something to clear my mind and something to make up my mind. Above all, I wanted to take a full rest, putting down the weight of my life under pressure. I had to heal something like a growing pains of middle-aged puberty that designed the second half of my life. Middle-aged puberty came more like a fever than early puberty. It was a time when I could only press down on things that were rising from the inside. Now, if I don't go somewhere and vomit it, it's likely going to explode. I thought it should be a marathon trip if it was a trip. I started to know that marathons are good for meditation not long after I started marathon. I wanted to enjoy the joys of overcoming the pain and crisis that come to me continuously. I wanted to meet the forgotten me to be seen dimly beyond.

 

문제는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필요한 최소한의 짐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과 거대한 산맥과 대평원을 지나려면 짐도 보통의 짐으로는 되지 않을 터이다. 그 짐을 짊어지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캠핑카와 그것을 운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건 경비가 엄청나게 들어서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마라톤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끝없이 달리고픈 열망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자꾸 화산의 마그마처럼 치솟아 올랐다. 가능성 있는 것에서 생각은 다시 출발했다. 사실 생각이라기보다는 몽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몽상을 하면서 생각을 키웠다. 배낭을 최소한으로 꾸리면 하루 20km 정도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뉴욕에서 약 400km 떨어져 있는 워싱턴까지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20km를 달려서 먹고 마시고 잘 것을 해결할 수도 없었지만 그것보다는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달리고 싶었다.

The problem was the minimum burden that was always needed when going on a trip. The burden would not be an ordinary burden if I should pass through endless deserts, huge mountain ranges and great plains. I can't run with that load. Or I need a camping car and someone to drive it. It was too expensive for me, but most of all, I wanted to have time alone for myself. Though I thought about it in many ways, it seemed to be impossible to travel alone in a marathon. I was giving up because it was impossible, but the desire to run endlessly continued to soar deep in my heart like the magma of a volcano. From what was possible, the idea set off again. In fact, it was more like a dream than an idea. I grew up thinking by daydreaming. I thought I could run about 20km a day if I packed a minimum of backpacks. Then I thought I could run to Washington, about 400km away from New York. I couldn't manage to eat, drink and sleep on a 20km run, but I wanted to run a bigger and wider world than that.

 

 

 

10918998_714553508642926_8198985327197446835_n.jpg

 

 

그러다 그야말로 시상이 떠오르듯 유모차가 떠올랐다. 센추럴 파크에서 바퀴가 큰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달리는 사람을 보았다. 유모차에다 짐을 실으면 하루 35km는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훈련을 해서 몸을 더 만들고 아주 천천히 km 9분대로 달리면 하루 풀코스 마라톤 거리인 42km는 충분히 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42km120일을 달리면 미대륙횡단 마라톤이 완성되는 것이다. 42km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다. 풀코스 마라톤 거리이기 때문이다. 구름 안에 있던 몽상이 이제 구름이 걷히며 모습을 드러내는 장엄한 산처럼 현실성 있는 계획으로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 마라톤을 웬만큼 뛰어본 사람이라면 내 계산법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생뚱맞은 돈키호테로 치부하는 사람이나 위대한 도전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들 모두 다 정답은 아니다. 물론 예측하지 못할 대자연의 심술궂음과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한 순간들을 충분히 감안해야할 것이다.

Then came a baby carriage to my mind, as if literally poetical inspiration were coming to a poet. In Central Park, I saw a person driving a baby in a baby carriage with big wheels. If I loaded the stroller, I thought I could run 35km a day. By training and building my body strong and running very slowly at 9 minutes per kilometer, I was confident that I could run 42.195km, the full course marathon distance per day. If I run for 120 days, 42 km each, I'll finish the trans- America continental marathon. Forty-two kilometers is an important thing, because it is a full-course marathon distance. The revery in the clouds was now turning to realistic plans just as a majestic mountain emerge from the clouds. Anyone who has run some marathons will agree with my calculation. Therefore, neither the people who regard me as a reckless Don Quixote nor those who praise me as a great challenger are the right answer. Of course, I should fully take into account the nasty and unpredictable nature and the dangerous moments we don’t know when and how it will strike.

 

이 여행의 마지막 퍼즐인 유모차가 생각나는 순간부터 실행에 옮기기까지 불과 한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퍼즐이 맞춰진 순간부터 이미 마음은 출발지점으로 떠나고 없어서 마음이 떠난 몸이 홀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부당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마음은 홈런타자에게 잘 맞은 공처럼 포물선을 아름답게 그리며 담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It took only a month from the moment I thought the last puzzle of the trip, the stroller, to put it into practice. From the moment the puzzle was set, I realized how uncomfortable and unjust it was to live alone without mind, for my mind already left me to the starting point form the moment when I thought of the stroller. The mind was flying out of the fence, beautifully drawing the parabola like a ball hit well by a home run batter.

 

불현듯 어느 순간 갑자기 떠나고 싶은 순간 홀연히 길을 나서는 즉흥적인 여행일지라도, 넉 달 남짓 혼자서 이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미대륙을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어떤 기계장치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만을 이용하여 횡단하려고 나서려면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하다.

Even if it's an impromptu trip that suddenly leaves the moment I want to leave and if I plan to cross this vast and dangerous American continent without any help, without using any gadgets, with only all your muscles, I need a minimum preparation.

, it takes a little more than four months of preparation to come out and cross .

 

우선 아내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해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사업부터 정리를 해야 했다. 떠나겠다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하자 마치 소용돌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휘감아 올려 날려버리는 토네이도처럼 나는 식당은 그대로 날려 보내고 자동차 액세서리 도매업은 내 일을 도와주던 사촌에게 양도하고 거의 모든 것을 다 날려 보내고 그야말로 이 여행이 끝나면 맨손으로 새 출발을 할 각오를 했다. 마치 가을나무처럼 다 떨구고 비워서 새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되기로 했다. 몸은 고달프고 힘들겠지만 마음이 그렇게 특별한 휴가를 통해서 쉬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배짱이 생겼다.

First of all, I had to ask for the understanding of my family, including wife and mother. And I had to clean up my business first. As the whirlpool of my mind began to blow away he restaurant, like a tornado that whipped up everything in the whirlpool and I handed over the car accessory wholesale business to my cousin who helped me with my work and blew away almost everything. I was simply determined to make a fresh start after this trip. I decided to become a bare tree waiting for the new spring as it was emptied all out. I will be tired very much, but I have the guts to do anything after my mind takes such a special vacation.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달릴 때 엄습하는 두려움을 극복할 최소한의 도구들은 필요하다. 오지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지만 사람들과의 비상연락의 끈이 되기도 하고 길을 안내하기도 할 스마트폰이 필요하고 그것에 전력을 공급해 줄 태양열 축전판이 필요했다. 추위나 비나 우박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가볍고 따뜻한 텐트와 침낭이 필요했다. 가스와 간단한 취사도구들도 필요하다. 내가 지나가는 행로를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줄 GPS 시계도 장만하였다. 이 모든 장비들과 체력을 유지할 음식과 물도 운반해 줄 당나귀 역할을 할 튼튼한 아이언맨 용 유모차를 준비했다. 그것도 쌍둥이용으로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으로 장만했다. 여분의 튜브와 사막 한가운데서 유모차가 아주 못쓰게 될 경우 중요한 것만 담아서 빠져나올 배낭도 준비했다.

A minimum of tools is needed to overcome the fear of being overtaken when I run on a road where others have never been. Although I jumped into the remote area, I needed a smart phone that would be a cord of emergency contact with people and guide me along the way. And needed a solar panel to give power to the smart phone, too. I needed a light and warm tent and sleeping bag to protect me from the cold or rain or hail. Gas and simple cooking utensils were also needed. I also bought a GPS watch to keep a record of my route. Especially I bought a strong Iron Man stroller to serve as a donkey to carry all this equipment and food and water to maintain stamina. I bought a twin carriage that could carry as much luggage as possible. I prepared some extra tubes and a backpack that I would get out of the way in the middle of the desert with only the important things in it when the stroller would be totally damaged.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가족들은 나의 이런 특별한 여행을 전적으로 이해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묵인하면서 말없이 응원해준다. 특히 모든 장비를 구입하는데 도움을 주고 기계치인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Mothers, wives and family members, if not entirely understanding my special trip, silently cheer me on with some acquiescence. I'm especially grateful to my wife who helped me buy all the equipment and taught me, a mechanic fool, to use it.

 

대자연의 침묵과 고요 속에서 사막의 지는 노을과 깊은 산 속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 대평원에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 마주하고 싶다. 그 속에다 내 마음 깊은 곳에 갇힌 슬픈 버펄로 같은 감정들을 풀어놓아 마음껏 풀을 뜯으며 뛰어 놀게 하고 싶다. 별빛 따라 달빛 따라 흐르는 모든 색상의 광선에 내 몸을 맡기고 세상에서 가장 야릇한 애무를 받기를 꿈꾼다. 전혀 다른 기후나 풍토, 대지에 흐르는 기운마저도 다른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맛과 새로운 인정을 느끼며 웅대한 대자연의 절경을 마음껏 몸속에 농축해 담아내는 거다.

In the silence and stillness of Mother Nature, I wanted to face

the desert sunset and the bright dew that forms deep in the mountains and the morning sun that rises in the Great Plains. There I wanted to let loose the sorrowful buffalo-like emotions trapped deep in my heart so that I can run around and graze to my heart's content. I dreamed of leaving my body to all the colored rays that run along the moon and stars and receiving the most whimsical caress in the world. I would feel a new taste and persons’ new warm affection there where enen the climate, land and the energy flowing through the land are all different. And I will hold the essence of spectacular scenery of nature in my mind.

나는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 그리고 비아냥거림뿐만 아니라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부러운 시선까지도 뒤로 하고 떠나려 한다.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하듯이 서로 다른 걱정과 격려를 해준다. 이별과 만남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이별을 언제나 슬퍼할 일은 아니다. 지금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떠나면 새로운 희망 또 새로운 역경과 고난에 마주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길과 날씨와 시시때때로 마주칠 위험과의 조우일 것이다. 놀라움에 가슴 졸여야 하는 시간일 것이다.

I was going to leave people's worries, anxieties and sarcastic thoughts behind, as well as curiosity, interest and envious eyes. People gave different worries and encouragement just as they order different foods at restaurants. Separating and meeting occur almost simultaneously. So parting is not always something to be sad about. If I leave now the familiar things behind, I will encounter new hopes, new hardships and difficulties. I will face unknown roads and unpredictable weather and the dangers that’ll occur from time to time. It would be a time to be heartbroken by surprise.

 

대륙횡단 마라톤은 북극탐험과 달나라여행 같이 아련한 선망의 대상이었다. 늘 곁눈질로 바라볼 뿐 말 한마디 못 붙이고 가슴만 설레던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말 한마디 못 붙이던 어릴 때 길가에서 마주치던 그녀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럴 때면 그렇게 뛰던 내 가슴의 설렘의 파동도 그대로 확연하게 느껴진다. 동행도 없고 무지원으로 미대륙을 달려서 횡단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고 아시아인으로는 내가 최초라고 한다. 막연한 꿈이 엄청난 모험이 되어가고 있다. 나 자신도 아직도 꿈속을 거니는 듯 몽롱할 때가 있다.

The transcontinental marathon was a vague object of envy such as the Arctic expedition and the trip to the moon. For me, it was like my first love, which I always looked sideways and couldn't speak a word, but was excited. I still remember clearly the face of the girl whom I met on the street when I was a boy but could not say even a word. When I think of her, I can clearly feel the excitement of my heart. It is very few even in the world to run across the Americas without a companion or support and I am the first Asian to do so, certainly. A vague dream is becoming a great adventure. Sometimes I am likely to daydream too as if I were walking in a dream.

 

내가 갈 길은 제각각 이름이 있는 길이다. 나는 그 길들을 이어서 뉴욕까지 달리겠지만 내 발길이 닿는 길을 이어서 만든 하나의 독립된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서슴없이 빛두렁길이라고 명명해버리고 말았다. 논두렁 밭두렁의 두렁은 내가 평소에 어감이 좋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평화와 희망의 뜻이 담긴 빛을 더하여 빛두렁길이라고 이름을 짓고 났더니 썩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아침에 눈을 뜨면 동으로 동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끝없이 달리는 길! 나는 이제 누가 깔아놓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명명한 빛두렁길을 최초로 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누구도 이 길을 이어서 한 번에 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누구도 이 길을 아무의 도움도 없이 나 홀로 마라톤으로 달리지 않았다. 나는 이 길을 이 땅의 원주민 인디언들이 믿고 또 내가 동의하는 대자연의 정령, 들짐승들의 영과, 하늘과 땅, 그리고 바위와 바람, 사막의 흙모래와 함께 길동무하며 달려갈 것이다.

The roads to go have their own names. I'd run along those roads to New York from L.A, but I thought I'd have to name one independent name to the roads that I’d run through on this journey. And I named it ‘Bitdurung-gil’ or 'Lightpath-MK' without hesitation. I’ve thought I had a good feeling about the word ‘nondulung-gil’ or ‘the edge road of the rice paddy field’. I liked it very much when I named it ‘Bitdurung-gil’ or 'Lightpath-MK’ adding the meaning of the light of peace and hope. It would be the road I’d always run to east and to east endlessly, waking up in every morning and watching the sun rising! I will now be the first person to run on ‘Bitdurung-gil’ or the 'Lightpath-MK’ which I named, not on the path laid down by others. No one will be able to ryn this path in one time. Of course, no one ran this path alone without anyone's help. Now I’m going to run along this path with the spirit of Mother Nature, which the native Indians believe and I agree with, the spirit of the wild animals, and the heaven and earth, and the wind and the sand of the desert, thinking them as my travelling companions.

 

 

by Kang Myong-ku

translated by Song In-yeup

 

 

10891495_720745551357055_8131770330671585746_n.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

 

 

 


우리카지노 2019-11-08 (금) 16:04:12
온라인에서 카지노를 즐기는 시대가 온 것만으로도 정말 신기하네요.
그러나 나는 분명히 언급해야한다고 확신합니다.
팀이 점수, 달리기, 목표 등을 카지노쿠폰에 대한 이윤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산금 양방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슈퍼카지노의 후속작으로 예전 어벤져스 모델을 표본으로 만들어진 후속사이트인 예스카지노ん는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옮겨와서 메이저카지노라는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딱 적당히 먹고 빠지는 법만 안다면 하루 330만원으로 시작이 가능합니다.
이런 규칙들에 잘 따라서 카지노사이트를 이용하시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casino-korea.com/casinoblog - 우리카지노계열
댓글주소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발행인 : 洪性仁 l편집인 : 盧昌賢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USA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