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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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어떤 날은 자유를 향한 희망을 기록하고, 어떤 날은 인간의 탐욕(貪慾)이 불러온 경제적 파국(破局)을 경고합니다. 또 어떤 날은 우리가 서로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뼈아프게 일깨웁니다. 1923년 터키는 공화국의 출범을 선언했고, 1929년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는 세계를 대공황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한국에서는 1987년 민주헌법이 공포(公布)돼 시민의 오랜 민주화 열망이 제도적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며 안전과 국가의 책임을 다시 묻게 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한날에 겹쳐 있습니다.
[역사속의 주요 장면]
1923년 10월 29일 — 터키 공화국,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다
오스만제국의 해체를 거친 터키가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독립전쟁을 이끈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습니다. 제국의 시대를 뒤로하고 국민국가의 길을 열겠다는 역사적 전환이었습니다. 공화국의 탄생은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새로운 답을 제시했지만,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이후에도 오랜 과제로 남았습니다.
1929년 10월 29일 — 검은 화요일, 세계경제를 덮친 공포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이른바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입니다. 투기 열풍과 과도한 신용거래로 부풀어 오른 시장은 투자자들의 투매(投賣)가 이어지면서 무너졌고, 미국 경제는 대공황이라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위기는 미국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생산과 무역이 위축되고 실업과 빈곤이 확산되면서 세계 각국의 사회와 정치까지 흔들었습니다. 시장의 번영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무너졌고, 경제의 안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과 연결돼 있는지도 드러났습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주가 뒤에는 일자리와 가족, 생계가 있었습니다.
1956년 10월 29일 — 수에즈 위기, 중동을 뒤흔든 전쟁의 시작
이스라엘군이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침공하면서 수에즈 위기가 본격화됐습니다.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에 반발한 영국과 프랑스도 군사 개입에 나서면서 국제적 충돌로 번졌습니다. 운하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핵심 해상 교통로였으며, 그 통제권은 식민주의의 유산과 신흥 독립국의 주권이 맞부딪치는 상징이었습니다. 위기는 결국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철군(撤軍)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에즈 위기는 전통적인 유럽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미국과 소련이 세계질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변화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1987년 10월 29일 — 민주헌법 공포, 국민의 뜻을 제도에 새기다
대한민국에서 제9차 헌법 개정안이 공포됐습니다. 6월 민주항쟁으로 분출한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제도적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새 헌법은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직선제를 도입하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했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장치를 확대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설치의 근거도 마련했습니다. 헌법은 권력을 부여하는 문서인 동시에 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정하는 약속입니다. 민주주의는 헌법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정신을 정치와 사회의 일상에서 실현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원칙이 됩니다.
2022년 10월 29일 — 이태원 참사, 지켜야 할 생명을 묻다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앞두고 몰린 인파 속에 대규모 압사 참사가 발생해 159명이 희생됐습니다. 많은 청년과 시민이 평범한 주말의 일상을 누리려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고 전부터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있었음에도 적절한 대응과 현장 통제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남겼습니다.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곳에서 위험을 예측하고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는 공적 책임입니다.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희생자를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름과 얼굴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지키는 일, 그것이 안전한 사회의 출발점입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엘런 존슨 설리프 (Ellen Johnson Sirleaf, 1938~ )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으로, 2006년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선출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내전으로 황폐해진 국가를 재건하고 평화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는 과제를 맡았습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와 지도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2011년에는 평화와 여성의 안전, 정치 참여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정치적 대표성이 확대되는 일이 한 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밥 로스 (Bob Ross, 1942~1995)
미국의 화가이자 텔레비전 진행자로, 프로그램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The Joy of Painting)》을 통해 대중에게 그림 그리는 기쁨을 전했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친근한 설명으로 복잡한 미술 기법을 쉽게 풀어냈으며, 누구나 그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예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리처드 드레이퍼스 (Richard Dreyfuss, 1947~ )
미국의 배우로, 영화 《아메리칸 그래피티》와 《죠스》, 《굿바이 걸》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굿바이 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젊은 나이에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며 인간의 불안과 욕망, 유머를 표현해온 그는 미국 영화사의 여러 장르를 대표하는 배우 가운데 한 명입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월터 롤리 (Walter Raleigh, 1552년경~1618)
영국의 탐험가이자 시인, 궁정 정치가였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북아메리카 탐험과 식민지 개척을 추진했으며, 문학과 정치에서도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1세 시대에 반역 혐의로 처형됐습니다. 그의 삶은 탐험과 문학의 성취 뒤에 왕권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던 시대의 냉혹함을 함께 보여줍니다.
조지프 퓰리처 (Joseph Pulitzer, 1847~1911)
헝가리 태생의 미국 언론인·신문 발행인으로, 미국 저널리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중신문의 영향력을 키우는 한편, 언론이 공공의 문제를 감시하고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유산은 ‘퓰리처상’으로 이어져 언론과 문학, 음악 분야의 뛰어난 성취를 기리는 상징이 됐습니다. 언론의 힘이 커질수록 사실을 추구하고 권력을 감시해야 할 책임도 커진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의 한마디]
“기억은 과거를 붙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약속이다.”
10월 29일의 역사는 공화국의 탄생과 경제적 파국, 민주헌법의 공포와 대형 참사를 한자리에 불러냅니다. 터키의 공화국 선포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려는 열망을 보여주었고, 검은 화요일은 탐욕과 불안정이 사회 전체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증언했습니다. 한국의 민주헌법은 시민의 저항이 제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이태원 참사는 제도와 행정이 생명을 지키지 못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드러냈습니다. 역사는 기념할 승리만을 골라 기록하지 않습니다. 실패와 희생을 기억하고, 그 원인을 밝히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책임까지 묻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목소리를 제도에 담는 일이며, 안전은 그 제도가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희생을 잊지 않는 동시에, 그 기억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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