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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문화방송․경향신문 입사후 신문사 사회부장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편집인(상무)을 역임. 한국신문윤리위원, 언론중재위원,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및 언론위원회 위원장, 한국카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고 숙명여대 홍익대 대학원 등에서 강의했다. 2007년부터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재직중이다. 최근 저서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인 피동형저널리즘을 날카롭게 파헤친<피동형기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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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학교를 만들자

글쓴이 : 김지영 날짜 : 2013-09-21 (토) 13:07:56

 


최근 법원의 현직 부장판사가 아파트 위층 주민의 자동차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잠금장치를 훼손(毁損)한 사실이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한 갈등(葛藤)때문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층간소음을 둘러싸고 주민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 자체는 이제 흔한 일이 되다시피 했다. 충격을 받은 이유는, 격한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사적 복수를 감행한 장본인(張本人)이 다름 아닌 현직 판사라는 점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사회유지를 위해 사람들 간의 갈등에 대해 물리력을 수반한 사적 복수를 일체 금지하고 있다. 오직 법에 따른 공적 심판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공적 심판을 집행하는 판사가 사적 복수에 나섰다.


 

더욱이 이 판사는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이른바 ‘판사 석궁 테러’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른바 ‘석궁 테러’는 한 교수가 ‘해고무효 및 복직’소송에서 패소하자 “부당하다”며 일으킨 사적 복수극이었는데, 이 판사는 당시 소송에서 재판장을 돕는 주심 판사, 즉 사적복수 대상 재판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처지가 이토록 극단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 참으로 묘한 일이었고, 그런만큼 ‘사적 복수’로서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게 다가왔다.

  

 

 

▲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공적 심판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적 복수에 나서거나, 공적심판을 받기도 전에 사적 복수에 나서는 것은 공적심판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공적 심판 불신은 근본적으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이 너무 크기때문에 생긴다. 오죽하면 공적 심판의 집행자가 사적 복수에 나서겠는가.


 

우리는 사회체제 유지를 위해 마땅히 공적 심판을 존중해야한다. 그러나 사적 복수와는 별개의 문제로, 그 전 단계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 그 엄중한 실존도 동시에 존중해야한다.


 

우리는 사람이라면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잔혹한 살인 사건들을 갈수록 자주 접한다. 이 많은 잔혹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 역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피해 가족들은 정신적 상처와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것은 물론 가족들마저 자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처럼 피해자 가족들이 트라우마로 불행의 나락(奈落)에 빠지는데 반해 가해자들은 교도소에서 종교에 귀의해 스스로 용서를 받기도 하고(요즘 유행어로 하자면 ‘셀프 용서’다) 신체를 건강하게 가꾸기도 한다. 다큐 영화 ‘용서’나 칸느 영화제 수상작인 영화 ‘밀양’을 보면 이같은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대부분은 성자 성녀가 아니다. 과연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기도 하는데···. 과연 그 모두를 용서해야 하나. 아니면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를 용서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에서 가정 파탄, 인종청소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생기는 불행이 너무 많고 그 중에는 인내와 관용을 키우는 자기 수양의 차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용서하라,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너무나 가혹하다. 아름답고도 가혹한 말씀이다. 가혹한 것은 무엇보다 용서의 구체적 실행지침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믿으셨다. 우리가 용서의 구체적 해결방법을 찾아낼 줄 아는, 숭고한 존재임을 믿고 맡기셨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노력은 너무 부실한 것이 아닌가.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에서는 범죄 피해자 가족들과의 심리상담 차원을 넘어 정신적 고통을 치료하기 위한 전용 시설이 꽤 많다. 참으로 세상을 구하는 길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데에서 비롯함을 잘 알고 실행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행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용서 학교’, 아니면 ‘용서 전문 과정’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 위 칼럼은 천주교 평화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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